곳곳에 흩어져 있는 조선시대 어필(御筆)을 한자리에 모으는 전시회가 마련된다.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은 27일부터 내년 2월 10일까지 `조선왕조어필'전을열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왕과 왕비, 대군과 군, 공주와 옹주 등 모두 46명이 쓴작품 90여점을 일반에 선보인다. 조선시대 문화예술사의 대표적 실천 주역이 왕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번전시는 조선조 서예사 전개의 근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출품작은 서첩, 간찰, 현판, 탁본, 병풍, 두루마리, 대련 등으로 다양하며 한문과 한글이 중심을 이루는 가운데 사군자 등도 소개된다. 내용으로 보면 시(詩)와 유(諭ㆍ신하에게 내리는 깨우침의 말), 사(賜ㆍ신하에게 선물로 하사하는 글), 제문(祭文), 전(箋ㆍ부전지), 소비(疏批ㆍ신하가 올린 상소에 대한 답이나 결), 잠명(箴銘ㆍ삶의 지침이 되는 경계의 말), 서간(書簡), 서문(序文), 발문(跋文) 등이다. 이번 전시는 특히 태종, 영조(한글), 명성왕후, 정순왕후, 순명효왕후, 인목왕후 등의 글씨가 최초로 일반에 공개되고 문종, 선조, 효종, 현종, 숙종, 사도세자,정조, 고종, 안평대군, 흥선대원군 등 서예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작품도 대거 소개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평가된다. 예술의전당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역사박물관 등 전국 40여개소 소장처에서 왕과 왕비의 글씨인 어필을 빌려와 △조선전기 △조선중기 △조선후기 △조선말기로 시대를 구분해 전시할 예정이다. 조선전기는 고려 말에 도입된 원나라의 조맹부 서체가 유행하던 때로 송설체의대가였던 문종과 안평대군, 성종 등은 조맹부 필적을 서예학습의 기준으로 삼아 보급에 앞장섰다. 전시작으로는 태종이 송거신에게 좌명공신의 훈호를 내린 `익대좌명공신송거신(翊戴佐命功臣宋居信) 교서' 등이 있다. 조선중기는 석봉 한호의 글씨가 국서체로 자리잡은 때로 선조는 석봉을 사자관으로 앉혔고, 그 자신도 엄정단아한 짜임과 필획의 석봉체를 구사했다. 이같은 서체는 퇴계와 율곡 등 도학자들의 미의식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출품작은 선조가 함경감사 송언신에게 보낸 비찰 `선조어서사송언신밀찰첩(宣祖御書賜宋言愼密札帖)' 등. 조선후기 어필로는 숙종과 영조, 정조의 글씨를 꼽을 수 있다. 숙종은 송설체에근간을 두면서도 유려하면서도 통쾌한 필력을 과시했으며 영조는 글씨의 전형보다개성을 추구했던 왕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정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변질된 서풍을 바로잡으로는 서체반정(書體反正)의 주역답게 안평대군 등 표준적 글씨체를 구사했다. 조선말기는 청조의 금석학의 영향을 받아 일대 변혁이 일었던 시기로 평가된다.그 주인공인 추사 김정희는 글씨의 근본을 종래의 왕희지 중심의 위진고법에서 서한예서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강경하고 졸박한 추사체를 확립했다. 전시작은 추사체를가장 충실하게 계승한 흥선대원군의 `석란도(石蘭圖)' 병풍 등. 주최 측은 "어필은 글씨의 기준이자 법으로서 신하와 백성들에게 교과서나 다름없었다"면서 "이번 전시에서는 어필의 역사가 곧 조선조 서예사의 대강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입장료 : 일반인과 대학생 3천원, 초중고생 2천원. ☎580-1300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