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생한 KBS 2TV 대하사극 「장희빈」의 폭행시비와 관련해 PD들이 외주제작사 교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을 계기로 지상파TV 외주제작의 정책방향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KBS는 외주제작 의무편성비율을 편법적으로 채웠음이 드러났고 방송위원회는 이를 방치해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KBS PD들의 제작거부 사태 KBS 드라마제작국 PD 30여명은 지난 7일 오후 평PD협의회를 개최한 뒤 성명을 내고 해당 제작사의 즉각적인 퇴출을 요구하는 동시에 제작사가 교체될 때까지 관련프로그램 제작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일 「장희빈」의 외주제작사인 A사의 김모 대표와 연출을 맡은 한모 KBS PD간의 몸싸움 끝에 한PD가 상처를 입은 것. PD들이 공동대응을 결의한 직접적인 요인은 외주제작사 대표가 PD를 폭행한 데 있지만 방송업계에서는 외주제작 및 외주제작사에 대한 PD들의 불편한 감정이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방송 관계자들은 지금의 외주제작 형태에선 제작진간 또는 제작사와 방송사간 다양한 마찰과 불투명한 거래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주제작 여부 시비 현재 방송법과 방송법시행령은 방송위로 하여금 지상파방송 사업자의 외주제작방송프로그램 의무편성비율을 고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상파방송 사업자는 매월 전체 방송시간의 33% 이상을 외주제작 프로그램으로 편성해야 하고 방송위는 이의 준수여부를 감시하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KBS는 외주제작사가 납품하는 형식의 「장희빈」을 외주제작 프로그램으로 분류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외주제작 형식을 빌린 자체 제작에 가깝다고할 수 있다. 「장희빈」 제작에는 KBS 시설이 사용되고 책임프로듀서 1명과 연출 2명, 조연출 2명중 1명 등 연출진이 KBS 직원이며 다른 스태프진에도 KBS 직원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외주제작 여부를 판가름할 때 중요한 잣대의 하나로 간주하는 저작권 또한 KBS의 소유다. 양측은 편당 9천만원 가량인 제작비 투입 비율에 대해서 밝히진 않고 있으나 「장희빈」 제작에서 외주제작사의 주된 역할은 연기자 섭외 등 일부에 국한됐을 뿐사실상 KBS가 제작을 주도하고 있다. KBS 드라마제작국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취약한 연기자 섭외에서 외주제작사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장희빈」은 외주제작 프로그램으로 분류되고 인정되고 있다. KBS 드라마제작국 PD들이 관련 프로그램 제작 거부 입장을 밝힌 점도 '외주제작'을 인정하고 있지 않음을 스스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외주제작 인정기준 마련 시급 방송영상 콘텐츠 시장 활성화를 위해 장기적으로 외주제작을 확대하려는 방송위의 정책은 의무편성비율이라는 채찍을 쓰고 있지만 지상파방송 사업자의 거센 저항에 밀려 파행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 외주제작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구분하는 기준이 없는 탓에 외주제작 형식을 빌린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 비일비재하다. 송경희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은 "외주제작 확대 정책의 핵심은 유형별로 외주제작 인정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기준이 없으면 의무편성비율이 높아지더라도 지상파방송 사업자들이 계속 편법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것"이라고지적했다. 이와 관련 방송위도 외주제작 인정기준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지상파방송 사업자와 외주제작업체간 첨예한 이해다툼 사이에서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방송위 관계자는 "외주제작 인정기준 도입이 외주제작을 둘러싼 마찰과 갈등의소지를 다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서도 "워낙 민감한 사안이어서조심스럽게 다룰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우기자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