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꺼지면 스크린에는 두 사람의 섹스장면이 밝아온다. 숨소리는 거칠고,살갗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다. 카메라가 조금씩 다가서면 주인공들의 근육이 뚜렷하다. 다름 아닌 남자들이다. "로드 무비"(김인식 감독)는 한국의 멜로 지형도에선 낯선 "동성애 코드"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영화는 동성애에 머무르지 않고 이성애와 동성애의 비교,나아가 사랑의 궁극적 실체에 접근한다. 황정민과 정찬이 연기한 두 캐릭터는 여느 남성보다 더 남성적이며,파워 또한 강력하다. "해피투게더"등 동성애를 다룬 영화들에서 게이들이 여성화됐거나,희화됐던 것과 다르다. 기둥 줄거리는 "거리의 천사" 대식(황정민)이 술에 취해 괴로워하는 석원(정찬)을 발견한 뒤 그와 함께 전국을 떠도는 내용. 떠돌이 다방여종업원이 그들의 여정에 동반한다. 펀드매니저였던 석원은 투자실패로 졸지에 거리로 나 앉게 됐고,대식은 가정을 버리고 서울역근처의 부랑자로 전락했다. 대식은 원래 동성애자였지만 석원은 가정을 갖고 있는 이성애자이다. 사랑의 경로는 일방적이다. 다방여종업원은 대식을 사모하고,대식은 석원을 짝사랑한다.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사랑은 이처럼 소통불가능한 것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듯 싶다. 비단 세 사람의 성 정체성 때문만은 아니다. 석원과 아내는 석원의 사업실패로 쉽게 파탄난다. 거리의 천사들도 보통사람들이란 점을 부각시키며 소외된 사람들에 따스한 눈길을 준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면 관객은 어느덧 자신을 발견한다. 인파로 북적대는 어시장,시멘트공장,채석장의 폭파 등은 역동적으로 표현됐다. 제작진은 예산절감차 16mm로 찍어 디지털소스로 옮긴 다음 극장용 35mm필름에 다시 담아냈다. 18일 개봉, 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