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위스 프리버그영화제 경쟁부문 대상과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받은 박기용 감독의 영화 '낙타(들)'가 오는 27일 개봉된다. 가정을 가진 중년 남녀의 불륜을 다룬 이 작품은 드라마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카메라가 철저히 제3자의 눈으로 일탈의 유혹과 도덕적 불안감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있다. 영화는 처음 만난 남녀가 월곶이란 서해안 포구에 도착해 횟집 노래방을 거쳐 호텔로 이동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은 서로 이름을 묻고 가족관계,살아온 내력,직업,건강 등을 조금씩 풀어 놓으며 공통분모를 찾아간다. "재수했어요.""나도 재수했는데." "만약에 우리가 옛날에 만났더라면…." 주인공들은 각자의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현존을 확인한다. 이튿날 아침 식당에서 남자가 다시 만날 수 있는지 묻자 여자는 묵묵히 매운탕 그릇만 내려다본다. 이 침묵은 '불안하고 어색한' 그들의 관계를 대변한다. 만남 이후 그녀의 행동은 줄곧 멈칫거린다. 호텔방 앞에선 문 대신 복도 쪽에 눈길을 주고 밤에 잘못 걸려온 전화벨에 화들짝 놀란다. 불안은 사운드에서도 감지된다. 식사 때는'후루룩''쩝쩝''우적우적' 등 거슬리는 소리가 유난히 요란하다. 자동차 운전 중에는 깜빡이와 엔진소리,침대에선 이불 뒤척이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어색한 만남에서 침묵이 흐를 때 주변의 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심리를 묘사하고 있다. 카메라는 대화 중인 당사자나 상대방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고 두 사람을 동시에 포착한다. 등장인물의 내면에 개입하지 않고 관찰자 시점을 견지함으로써 리얼리티를 확보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흑백 화면,지극히 평범한 얼굴의 남녀 주인공,일상적인 대화,밋밋한 줄거리,감각적 연출을 배제한 성애장면 등은 할리우드 영화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