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두 나라,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깊고도 넓은 '강'을 어떻게 건너야 할까. 지난 3일부터 일본 도쿄(東京) 신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한일 합작극 「강 건너 저편에(일본어 제목:저 강 건너 5월)」는 이런 질문에 대해 한일 양국 연극인들이 찾아낸 해답이다. 이 공연을 먼저 제안한 것은 신국립극장. 한일 양국의 극작가와 연출가, 배우와 스태프가 만나 2년 6개월간 꾸준히 다듬으며 완성했다. 일본에서는 90년대 일본 연극계를 휩쓴 '조용한 연극'의 창시자 히라타 오리자(平田オリザ)가 극작.연출로 참여했고 한국에서는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돐날」 등으로 탄탄한 필력을 보여준 젊은 극작가 김명화, 그리고 연출의 이병훈이 참여해 준비했다. 특히 히라타는 한국 유학파로 한국어에 능하며, 일제 시기 서울에 사는 일본인 가족을 소재로 한 「서울시민」을 선보이기도 한 '지한파' 예술가다. 배경은 서울 한강의 여의도공원.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5월 어느날 이 공원으로 한국어를 배우러 찾아온 어학당의 일본인 학생들과 그들을 가르치는 한국인 선생 가족이 함께 '벚꽃놀이'를 나온다. 그러나 서로의 언어를 잘 모르는 탓에 이들 사이의 '소통'은 불완전하고 그로 인해 오해가 생긴다. 불량품이 많은 한국 제품이나 한국인의 '빨리빨리' 증후군, 교육문제로 이민을 떠나는 한국인과 신혼여행에서 바로 이혼 당하는 일본 남자의 초라한 자화상 등 이질적인 문화는 서로에게 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연극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개인사 속에 한국과 일본이 안고 살아가는 오늘의 고민과 상대방 나라에 대해 지니고 있는 이해와 오해를 포개놓는다. 일제 식민시기를 살았기 때문에 애증의 이중적 감정을 지닌 노인세대와 거부감없이 상대방 나라를 좋아하는 신세대, 그리고 그 사이에 위치한 반일감정 등이 복잡하게 얽힌 채 벚꽃놀이를 나온 양국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넓혀간다. 이 작품은 어떤 답안을 성급하게 내놓지 않는다. 다만 양국이 오늘 서로에 대해 품고 있는 복잡한 감정과 생각을 담담한 어조로 풀어보이며 거기서 '소통'의 실마리를 찾고자 할 따름이다. 아사히(朝日)신문은 "그러한(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틈 사이로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속마음이 담담하게 묻혀 있어 때로는 가슴 철렁하기도 하고 때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는 체험을 하게 한다"고 소개하며 "(이런 체험은) 적지 않은 한일 합동작업 속에서도 이색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아울러 "히라타 오리자가 김명화와 콤비를 이뤄 종전보다 한 걸음 깊숙이 다가간 자세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말했다. 네모토 초베이(根本長兵衛) '유럽연합(EU)-일본 축제'의 일본위원회 프로그램 감독(교리쓰(共立)여대 교수)은 "한일의 보통 사람들, 중산층 서민 각각이 자기 나라와 상대방 나라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을 정확하게 잘 표현한 연극"이라며 "특히 가족의 중심을 잡고 있는 어머니가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공연을 관람한 아카시 모모코(明石挑子. 여대생) 역시 "일전에 「지하철 1호선」을 보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이번에 다시 이 공연을 봤는데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다"며 "아버지 친구중에 재일교포가 있는데 오늘 공연을 보면서 공감이 됐다"고 말했다. 한국측 배우는 국립극단 단장 출신의 원로배우 백성희씨를 비롯, 이남희 서현철 우현주 김태희가 출연하며, 일본에서는 미타 카즈요(三田和代) 사토 치카오(佐藤誓) 타나가와 키요미(谷川淸美) 등이 참여했다. 한일 월드컵 대회 및 한일 국민교류의 해 기념으로 준비된 이 공연은 13일까지 일본 공연을 가진 뒤 오는 28-29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도쿄=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