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배우'란 칭호는 사실 배우에게 독약입니다. 저마다 표현영역이 다를 뿐이죠." 최민식은 '취화선'에서 오원 장승업역이 '살 떨리는 배역'이었다고 술회한다. 깡패 같은 검사(넘버3), 불륜의 아내를 살해하는 남편(해피엔드), 냉혹한 간첩(쉬리), 삼류건달(파이란) 등 각종 인물들을 소화해 청룡영화상을 비롯 각종 연기상을 휩쓸었던 그로서는 의외의 말이다. 일천한 자신의 연륜으로 천재화가를 연기하기는 어려웠다는 고백이다. 화명(畵名)이 높아질수록 번민도 깊어지는 캐릭터는 더 큰 부담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제 자신을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제 연기의 매너리즘을 깨기 위해 초심으로 돌아갔던 거지요." 극중의 오원처럼 그는 연기자로 이름이 높아지자 '절대연기'를 향한 고뇌도 깊어졌다. 그래서 임권택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안성기 등 한국 최고의 감독과 배우들의 살냄새를 맡으며 스스로를 점검하고 싶었다. 임 감독은 예의 '면도날'처럼 그의 실수들을 짚어냈다. 그는 온몸의 촉수를 곤두세워 오원의 캐릭터에 근접해 갔다. 그 과정은 그에게 좌절과 성취를 동시에 안겨줬다. 대본이 바뀌거나 고된 일정으로 짜증났을때는 대들기도 했다. 그것은 '혼쭐'로 되돌아 왔지만 배우로 한단계 도약하는 몸짓이었다. "세간의 인식처럼 오원은 기인이 아닙니다. 그저 예술혼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간혹 돌출 행동이 나온 것이지요. 그는 진정 화선지처럼 순수한 사람입니다" 정상인의 예술혼을 극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천재적인 연기술이 필요했다. 극히 절제된 연기로 선(仙)의 경지에 오르는 길이다. "제가 장승업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게 배우의 한계지요. 저는 그저 장승업의 근사치를 향해 나아갔을 뿐이죠. 지독한 외로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순간 어느 누구도 내 연기에 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제 스스로 이 세상의 단 한 사람임을 절감했습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