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0년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걸작 '라쇼몽'에서 살인에 관한 네가지 목격담을 통해 '진실부재의 세상'을 통박했다. 99년 워쇼스키 형제의 SF영화 '매트릭스'는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진실의 조작 가능성을 경고했다. 지난해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인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코엔 형제 감독제작)는 진실의 불가해성을 설명하는 수작이다. 제목은 '진실은 거기 없었다'로 고쳐져도 무방하다. 필름누아르 전통에다 코미디를 섞은 복합장르 양식의 수면 위로 그 메시지가 떠오른다. 194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적한 마을, 이발사 에드(빌리 밥 손튼)는 스스로 이발사가 아니라고 독백한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변화를 꿈꾸는 것이다. 그 즈음 아내 도리스(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직장보스 빅데이브(제임스 갠돌피니)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손님으로부터 신종사업인 드라이클리닝에 투자하면 한 몫 잡을 수 있다는 말에 에드는 빅데이브에게 불륜사실을 협박해 돈을 뜯어 낸다. 하지만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에드는 빅데이브의 공격을 막다가 우발적으로 그를 죽인다. 그러나 경찰은 도리스를 진범으로 체포한다. 빅데이브와 공모해 횡령한 돈을 홀로 착복하려고 살해했다는 혐의다. 에드도 투자금을 맡긴 손님에게 사기당하지만 그 손님의 시체가 발각되면서 오히려 살인누명을 쓴다. 손님은 정작 빅데이브에게 살해당했다. 각 에피소드들은 표면적인 사실과 속내가 다르도록 짜여져 있다. 에드가 살인한 사실은 얼추 맞지만 살해대상은 다른 인물(빅데이브)이며, 사기꾼 손님에게는 피해자이다. 빅데이브는 피살자이지만 살인자이기도 하다. 도리스는 감옥에서 자살하는데 그 이유도 일반인들이 생각하듯 횡령과 살인에 대한 죄의식이 아니라 불륜에 대한 책임감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에드마저 처형당함으로써 진실은 영원히 묻히고 만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유죄'이며 '자살' 또는 '처형'된 인물로 기억된다. 이 사실은 얼핏 봐선 옳지만 엄밀한 의미의 진실은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숱한 진실들도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다. 도리스의 변호사 리든슈나이더(토니 샬록)의 말에서도 이는 자명해진다. "독일의 '프리티'인가 '워너'인가 하는 학자의 이론에 의하면 어떤 현상을 과학적으로 테스트하자면 관찰해야 하는데 관찰하면 관찰행위 자체가 현상을 변화시킨다는 거죠. 그래서 현상의 실체를 알기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결국 진실을 알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이 이론을 불확정성의 원리라고 합니다." 불확정성의 원리는 사실 '하이젠베르크'의 이론이다. 양자역학에서 어떤 소립자에 관해 정밀하게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변호사의 말이 대강 맞지만 약간 틀린 것도 '진실규명의 난해성'이란 주제와 맞아 떨어진다. 코엔 형제는 이 작품을 컬러필름으로 촬영해 흑백으로 바꿔 프린트했다. 때문에 흑백영화보다 흑과 백의 색조가 뚜렷히 구분되지 않는다. 진실이란 그렇게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3일 개봉. 18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