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위협하는 악당과 맞서 싸우는 영웅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짜릿한 통쾌감을 준다. '슈퍼맨'과 '배트맨', '엑스맨' 등 온갖 무소불위의 초능력을 지닌 영웅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재생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62년 첫 선을 보인 이래 숱하게 출판 만화와 TV시리즈, 애니메이션, 게임으로제작돼온 `스파이더맨'이 최신 디지털 기술을 등에 업고 영화로 돌아왔다. 스크린에서 선보이기는 이번이 처음. 사령탑은「이블데드」시리즈의 샘 레이미 감독이 맡았다. '거미 마스크'를 거머쥔 주인공은 「사이더 하우스」「라이드 위드 데블」의 토비 맥과이어. 널리 알려진 근육질 스타나 액션 히어로가 아니다. 이웃집 청년처럼 순박하면서 어리숙해보이는 그는 관객들의 대리만족을 충족시키기에 더없이 제격인 듯 보인다. 평범한 소시민과 영웅으로서 남몰래 이중의 삶을 누리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을 법한 상상이 아닌가. 과학에 관심이 많은 `피터'. 이웃집 소녀 '메리'를 어릴 적부터 짝사랑해 왔지만 말 한마디 못 걸어봤을 정도로 내성적이고 소심한 고등학생이다. 그런 그의 인생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거미박물관에 견학갔다가 유전자가 조작된 슈퍼거미에게 물린 뒤 거미의 감각을 갖게 되면서부터. 잠에서 깨어나 보니 몸은 근육으로 단련돼 있고 안경을 안 껴도 시야가 맑다.손에서는 강력한 거미줄이 나오는가하면 벽을 타고 기어오를 수도 있다. 시비를 걸어오는 메리의 남자 친구를 늘씬하게 두들겨 패준 뒤 몸의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그러던 중 자신이 못본척 했던 강도에게 사랑하는 벤 아저씨를 잃게되자 엄청난능력을 `공공의 적'을 물리치는데 쓰기로 한다. "큰 힘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는 아저씨의 유언을 가슴에 새긴 채. 한편 피터의 절친한 친구의 아버지인 `노만'은 실험 도중 가스에 중독돼 괴력을지닌`그린 고블린'으로 변신한다.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그린 고블린과 `정의의사자' 스파이더맨과 피할 수 없는 대결이 이때부터 펼쳐진다. 이미 잘 알려진 줄거리의 심심함을 커버하는 것은 역시 급하강과 상승을 반복하며 도심의 빌딩 숲을 활보하는 스파이더맨의 공중 곡예다. 카메라는 스파이더맨의눈이 돼 도심을 비추면서 마치 번지점프를 직접 하는 듯한 아찔한 스릴을 선사한다. "이것은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라는 도입부의 내레이션처럼, 볼거리는 화려한데 내용은 없다는 비난을 피하려는 듯 멜로와 드라마를 강화시킨 흔적도 곳곳에 감지된다. 그러나 주인공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드라마 부문과 스파이더맨과 고블린의 대결이 펼쳐지는 액션 장면, 이 두 부분이 주는 느낌의 차가 너무 커 영화는 전체적으로 갈팡질팡하는 듯한 모습이다. 한 편이 아니라 마치 두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특히 특수소재로 만든 녹색 의상을 입고, 비행 접시를 타고 날아다니는 악당 고블린의 캐릭터는 너무 희화화돼 있어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5월3일개봉. (서울=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