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50년대 초반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의 광기를 비판한 「크루서블(TheCrucible:시련)」이 30일-4월 13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밀러가 1953년 발표한 이 작품은 실제로 17세기말 미국 뉴잉글랜드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마녀사냥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밀러가 주목한 것은 집단광기와 이데올로기, 그리고 선동이 무고한 사람을 죄인으로 내모는 마녀사냥과 공산주의자사냥의 유사성. 밀러는 당시 미국을 휩쓸던 매카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했던 것이다. 작품은 매사추세츠주 세일럼이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소녀들의 순진한 장난이 '마녀'를 둘러싼 집단광기와 만나 어떻게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가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마을 소녀들이 벌거벗은 채 악령을 부르는 의식을 치르는 데서 시작한다. 이 광경이 우연히 파리스 목사에게 목격되면서 '마녀'로 내몰릴 위기에 처한 소녀들은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소녀들에 의해 거명된 사람들은 차례로 법정에 끌려나와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이 과정에서 진실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외롭게 싸워나가는 주인공 '프록터'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서울시극단의 이태주 단장은 1970년대말 이 작품을 직접 번역해 무대에 올릴 준비를 했지만 당국의 공연 불허로 끝내 막을 올리지 못했다. 이 단장으로서는 4반세기만에야 비로소 뜻을 이루는 셈이다. 이 단장은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시작된 사건이 결국 애매한 사람을 교수형으로 몰고가는 집단광기에 대한 작품"이라며 "작품에는 '매카시즘'이라는 말이 한 번도 안 나오지만 아서 밀러는 이를 비판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출은 윤영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가 맡았다. 윤 교수는 "극적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엄청나기 때문에 디테일을 쳐내고 현대 관객들의 감각에 맞도록 빠르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밀러의 원작은 1987년 대니얼 데이 루이스와 위노너 라이더 주연으로 영화화되기도 했다. 53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랐던 「마녀사냥」은 이후 64년, 72년, 91년 재공연에 이어 이번 달초부터 또다시 브로드웨이 버지니아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프록터 역에 강신구를 비롯, 최슬 강지은 여무영 박봉서 김신기 주성환 등 서울시극단 단원들이 출연한다. 공연시간 화-목요일 오후 7시 30분, 금.토요일 오후 3시.7시 30분, 일요일 오후3시). ☎ 399-1647~8.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