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양아치'들의 미덕은 낙천주의에 있다. 그들은 알 수 없는 미래를 무대책과 무비전으로 맞선다. 조직폭력배와 달리 스스로 내킬때 행동하는 '소신파'이기도 하다. 양아치들은 폭발적인 에너지로 삶을 변주하며 '학습되지 않은'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조민호 감독의 첫 영화 '정글쥬스'는 청량리역 창녀촌 주변에서 자란 두 양아치의 모험담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포장한 코믹액션물이다. 좌충우돌식 액션, 거친 폭력과 욕설, 야한 섹스 등 '상업적 코드'들로 가득한 버디영화다. 서양 버디영화의 고전 '내일을 향해 쏴라'와 '델마와 루이스'들의 주인공들이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 장혁과 이범수는 해피엔딩을 약속받는다. 제목 '정글쥬스'는 '러미날' 등 각종 약을 섞어 만든 즉석환각제를 일컫는 은어다. 값비싼 마약이 조폭들에게 어울리는 약이라면 정글쥬스는 가난한 양아치들의 기분전환용 약물이다. 주인공 기태(장혁)와 철수(이범수)는 정글쥬스를 마셔 간을 키운 뒤 현금지급기를 턴다. 이 영화에서 정글쥬스는 피튀기고 긴장감이 짓누르는 범죄를 코미디로 바꾸는 약효로 기능한다. 기태와 철수는 '재수없게' 조폭세계에 한쪽 다리를 걸쳤다가 2천만원을 덤태기로 물어내야 하는 곤경에 처한다. 충동적으로 현금지급기 강탈에 나서 경찰에 쫓기다가 우연히 마약을 수중에 넣으면서 조폭들에게도 추격당한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다. 두 양아치는 창녀와 손잡고 습득한 마약을 팔아 일확천금을 꿈꾼다. 그 과정은 일련의 폭력으로 나타난다. 양아치와 양아치의 패싸움, 조폭과 조폭의 혈투, 조폭과 경찰의 한판 승부 등 각종 대결구도가 '폭력코드'를 심화시킨다. 창녀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주인공들의 치기어린 정력대결은 강력한 '섹스코드'로 작용한다. 등장인물과 사건들의 관계는 '돈'으로 깊숙히 얽혀 있다. 돈벌기 위해 마약거래를 하는 조폭, 몸파는 창녀, 퇴폐이발소 업주와 여자면도사 등... 물신화된 세상에서 금전만이 이들의 유일신이다. 양아치들도 그 세계와 결탁하지만 그들보다는 낭만적이다. 배우들의 이미지 변신은 두드러진다. 손창민은 준수한 귀공자의 이미지를 벗고 저열한 조폭으로 등장한다. 영화 '나쁜 남자'의 한기처럼 짧게 친 머리, 검게 그을린 얼굴에다 칼자국이 여럿 박힌 뒤통수, 짙은 문신으로 도배했다. 장혁은 한층 가볍고 발랄해졌으며, 코미디배우로 각인돼 있던 이범수는 어리숙해서 낙천적일 수 밖에 없는 양아치로 분했다. 그러나 역동적인 에피소드들의 연결은 그리 매끄럽지 못하다. 배우의 액션은 완결되기 전에 다른 장면으로 전환되고 흐름이 순간 순간 끊긴다. 조민호 감독은 연출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청량리 주변에서 신나고 재미있는 유년기를 보냈다. 내 양아치 친구들은 단순하기에 거칠었고, 그 에너지는 폭발적이었다. 그들의 용솟음치던 생의 에너지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22일 개봉. 18세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