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남자」를 제52회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려놓은 김기덕(42) 감독이 15일(현지시간)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열린 시사회에 참석한 뒤 하얏트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등 적극적인 영화 홍보활동에 나섰다. 국제영화제에 여러번 진출한 경력이 있는 김 감독은 이날 회견에서 다양한 주제에 걸쳐 민감한 질문을 퍼붓는 각국 기자들을 상대로 비교적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영화관을 피력하는 등 여유있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남자 주인공의 대사가 거의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전의 삶에 깊은 상처가 있기 때문에 사회와의 소통수단인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대사가 없으면 등장인물의 심리상태가 무겁게 전달된다. 시나리오에는 대사를 넣어 배우가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이해하게 한 뒤 촬영 때는 빼버려 눈빛과 표정과 몸짓으로만 표현하게 했다. --사랑의 기쁨은 보이지 않고 폭력이 난무한다. 동양에서는 폭력이 애정 표현인가. ▲물론 아니다. 한국은 근대 이후 식민지배와 전쟁을 겪어 사람들의 의식에 폭력성이 깔려 있다. 대화 대신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옳지 않지만 고쳐지기까지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폭력은 몸으로 하는 말일 수 있다. --폭력이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설정을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영화를 러브스토리로 이해한다면 굉장히 위험하며 내가 지탄받아 마땅하다.일부 평론가들의 지적처럼 '페니스 파시즘'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20분을 유심히 보면 운명을 이야기하려 했다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찢어진 사진의 조각을 맞추는 장면에 주목해달라. 우리 주변에는 우발적이면서도 이해못할 관계들이 존재하고 있다. --여주인공이 매춘부로 전락하는 과정에서 왜 부모나 교수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가. ▲창피한 일일수록 부모에게 말하기 어렵다. 또 그런 일을 갑자기 당하면 방어능력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장치가 존재한다. 실제로 사채를 썼다가 갚지 못해 창녀가 된 경우도 많다. 창녀가 된 이후의 이야기에 무게를 두기 위해 앞의 과정은 많이 생략했기 때문에 비약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한 여자가 그렇게 쉽게 창녀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100분이 더 필요하다. 이 점을 이해못한다면 후반부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내 흥행보다 국제영화제의 평가가 더 좋은 까닭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에서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구상적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관객이 이해할수 있는 범위 안에서 영화가 주로 만들어진다. 나는 프랑스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익힌 반추상적 표현을 동원해 사실과 상상이 결합된 영화를 내놓았다. 그러나 국내 관객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번 영화로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어 기쁘다.99년 「파란 대문」 이후 내 영화에 유럽 영화제들이 꾸준히 관심을 보여 여기까지올 수 있었다. 3년간의 유럽생활과 유럽의 영화제에 감사한다. --7번째 영화인 「나쁜 남자」에 와서 갑자기 대중적 인기를 얻는 까닭은. ▲(이승재 LJ필름 대표)비록 소수지만 꾸준히 김기덕 감독 영화를 주목한 사람이 늘고 있었기 때문에 느닷없는 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개봉에 맞춰 주연배우 조재현이 TV 드라마 「피아노」로 높은 인기를 얻었던 것도 큰 보탬이 됐다. 김기덕감독과 배우 조재현의 힘이 잘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베를린=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