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미술관장' 이경성(82)씨. 그는 한국 미술의 제1세대 평론가다. 더불어 근래 들어서는 화가로도 통한다. 이씨는 1990년대 이후 8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요즘도 작업이 활발해 하루 10여점을 그리기도 한다. 재료는 먹과 붓, 검정 사인펜, 종이, 캔버스 등. 빠르고 직관적인 터치로 인물들을 표현해나간다. "장난삼아 그려보는 거지. 그리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 우스개 얘기같지만 진작화가가 될 걸 그랬어. 평론에서 느낄 수 없는 묘미가 있거든. 시간 보내기에도 그만이고...." 그의 작품은 어찌 보면 낙서와 같다. 초서체의 경쾌함도 있다. 세부묘사가 생략된 화면 속의 군상은 상형문자를 닮았다. 그래서 어떤 이는 '기묘한 글씨체야"라고웃는단다. 오는 20일부터 3월 3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석남(石南)이 그린 사람들'전. 그의 호를 딴 이번 전시에는 80호짜리를 포함해 작품 100여점이나온다. 모두 2000년 이후에 그린 근작들. 단순화되고 중복된 이미지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림 그리는 이유를 묻자 이씨는 '외로워서'라고 대답한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그리워진다는 것이다. 평생을 미술인들과 더불어 살아온 이씨이지만 그들의 체온에 대한 그리움은 떨쳐버리기 힘들다. 작품에는 이런 열망이 녹아 있다. 이씨의 가족은 단촐하다. 아내와 딸이 전부다. 보통 예닐곱의 자녀를 둔 동년배들과 비교하면 아주 적은 편. 그나마 아내와 딸은 미국에 건너가 있고, 혼자서 여의도 아파트에서 산다. 이번 전시는 지인들이 마련해주는 자리다. 이연수 모란미술관 관장을 비롯해 예술철학자 조요한, 시인 김남조, 신부 조광호, 조각가 이춘만씨가 마음먹고 '석남전추진위원회'를 결성했다. "나는 아마추어야. 아마추어는 잘 그리면 안돼. 팔아서도 안되지. 그저 독서 대용으로 낙서하듯이 붓을 놀리지. 이를테면 유희라고나 할까, 허허" 작품 속의 여인과 군상은 외로움을 말해주는 상징들이다. 단발머리 여자 얼굴은그리움과 애정의 전형으로 다가오고, 빼곡이 들어찬 군상은 바람처럼 떠도는 자화상으로 비친다. 이씨는 '외로움을 잘 표현해야 바람둥이가 될 수 있다'며 플라토닉한여성관을 드러낸다. 그는 전시를 앞두고 350쪽 분량의 작품집도 펴냈다. '석남이 그린 사람들'이란제목의 이 화집에는 근 10년 동안 일기 쓰듯 그려온 먹과 아크릴 작품이 실려 있다.더불어 김환기에 대한 비평집 「내가 그린 점 하늘 끝까지 갔을까」(아트북스)도 20여년만에 다시 냈다.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이씨는 해방 이듬해 국내 최초의 시립박물관인 인천시립박물관을 연 것을 시작으로 미술관과 박물관의 설립과 운영에 독보적인 활동을 펼쳐왔다. 이후 이화여대박물관과 홍익현대미술관 등을 설립하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워커힐미술관 관장을 지내는 등 박물관과 미술관의 대부로 미술 발전에 이바지했다. 27살때 미술관장을 처음 맡은 이씨는 최근 서울올림픽 미술관장직을 떠나기까지 평생 미술관.박물관장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석남미술문화재단 이사장, 모란미술관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이씨는 1954년부터 홍익대, 연세대, 한양대, 서라벌예대, 이화여대에 출강하면서 미술비평에 나서 한국 미술평론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1965년에는 한국미술평론가협회를 창립했다. 1981년 석남미술상을 제정, 해마다 시행해오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