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리 형제의 유머 감각은 남다른 데가 있다. 카메론 디아즈의 머리에 정액을 발라 웃음거리로 만든다거나(`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짐 캐리를 정신분열증 환자로 등장시켜 원맨쇼를 펼치게 하는 것(`미,마이셀프 앤 아이린')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번에는 바비인형처럼 늘씬한 여배우 기네스 펠트로를 130㎏이 넘는 뚱보로 만들기에 이른다. 신작「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원제 Shallow Hal)」에서다. "늘씬한 미인과 데이트를 하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생활 신조로 삼은 주인공 할. `작은 키에 아랫배가 두툼한' 제 외모는 생각지도 않고 미인들만 골라 집적대는 그에게 장단을 맞춰주는 여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로즈마리(기네스 펠트로)를 만난게 된 것. 우연히 유명 심리상담사 로빈스와 함께 고장난 승강기 안에 갇혔다가 내면의 아름다움만 볼 수 있는 최면에 걸린 직후다. 금발에 늘씬한 몸매, 천사 같은 성품을 지닌데다 할의 회사 사장 딸인 로즈마리는 외모와 심성, 부의 삼박자를 갖춘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는' 여자였다. 헌데 그녀가 앉는 의자마다 폭삭 주저앉는가하면 다이빙 한 번에 수영장 물이 반은 넘쳐나고 벗어놓은 속옷은 낙하산만 하니, 이게 어찌된 일일까. "허리가 날씬하다"는 할의 진심 어린 칭찬에도 그녀는 "나를 놀리지 말라"며 토라져 버린다. 엽기와 재기발랄함 사이를 자유자재 넘나들며 웃음을 선사했던 패럴리 형제는 '화장실 유머의 대가'라는 평가에만 머물기 싫었는지 이번엔 교훈까지 담아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마음에 있다 쯤 될까.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비틀기를 시도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사회적 편견 위에 발을 딛고있어 시각이 썩 신선하지만은 않다. 코미디물에서, 게다가 `패럴리표' 영화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걸까. 영화는 시쳇말로 `눈에 콩깍지가 쓰인' 주인공 할의 시선과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는 관객들의 시선, 두 가지로 전개된다. 기네스 펠트로의 늘씬한 다리를 훑은 카메라는 관객의 눈으로 돌아가 통나무보다 더 굵어보이는 다리 한 쪽을 잡아낸다. 또 실제 늘씬한 미인은 '심성까지 고울리 없어' 할의 눈에는 피부가 쭈글쭈글한 사악한 성격의 할머니로 보이는 식이다. 기네스 펠트로가 뚱보로 변장한 모습은 막판 10분 전에나 볼 수 있다. 그녀의 상대역은 코미디 영화「사랑도 리콜 되나요」에서 호연했던 잭 블랙이다. 23일 개봉.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