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적끈적한 음악이 흐르는 지하공간. 검은색 가죽 속옷을 입은 여자가 천천히 카메라 앞으로 걸어온다. 약을 주사한 탓에 눈은 풀려 있고 걸음걸이는 비틀거린다. 여자 뒤에서 가죽마스크를 쓴 남자가 나타난다. 농밀한 애무, 흐느끼듯 휘감기는 음악. 남자는 뒤에 감췄던 칼을 꺼내서 여자를 난자한다. 낭자한 피, 그리고 카메라 스톱. ''건블라스트 보드카''는 스너프 필름의 제작과정을 다룬 영화다. 스너프 필름은 포르노를 찍으면서 살인까지 하는 실제상황을 담은 일종의 다큐멘터리. 인간의 관음욕구가 극단적으로 표출된 영화다. 그 존재가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진짜 스너프 필름이 은밀히 거래되고 있다는 소문은 끊임없이 떠돌고 있다. ''건블라스트 보드카''는 스너프 필름의 원조가 러시아 마피아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주인공은 ''투캅스''나 ''러시아워''에서처럼 성격이 판이한 두 형사다. 시체의 향수냄새로 사망시간을 파악하고, 수사하러 간 술집 무대에 올라가 쇼걸과 한바탕 춤을 추는 날라리 형사 마렉(마리우스 푸조)과 굳은 표정으로 사건해결에만 전념하는 아벨(괴츠 오토). 이들이 폴란드의 거대한 성 안에서 스너프 필름을 만드는 악당들을 찾아내 응징한다는 것이 줄거리다. 프랑스 출신의 장 루이 다니엘 감독은 헐리우드와 다른 색깔의 액션을 선보이려 했으나 그것은 묘하게도 ''영웅본색''의 오우삼식 액션과 닮아 있다. 특히 쌍권총을 비스듬하게 들고 난사하는 아벨은 영락없이 ''어설픈 주윤발''을 연상시킨다. 뻔한 스토리 전개 때문에 빠른 장면전환도 박진감을 끌어내지 못하고 만다. 자극적인 소재를 들고 나왔다는 것 외에는 연출, 연기, 재미 어느것 하나 내세울게 없는 영화다. ''건블라스트 보드카''는 폴란드산 최고 독주 보드카의 이름. 26일 개봉. 이정환 기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