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기 방송위원장이 17일 자진사퇴함으로써 그동안 사실상 마비상태였던 방송위원회 기능이 정상화될지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사퇴한 표면적 계기는 지난 16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가 합의한 방송법 개정안이다. 이 개정안엔 위성방송의 지상파 의무재송신 대상에서 KBS 2TV를 제외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기존 정책 변경이 불가피하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사퇴하기까지는 방송위원회 안팎에서 끊임없는 혼란과 갈등이 있어 왔다. 혼란은 지난해 11월19일 방송위원회가 방송채널정책 운영방안을 내놓으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정책엔 오는 3월 출범하는 한국디지털위성방송이 서울MBC와 SBS를 향후 2년 뒤부터는 전국에 재전송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지역민방·지역MBC 대표들은 ''방송위원회의 채널정책이 지역방송 말살정책''이라며 서울로 올라와 농성을 벌였다. 이들의 농성은 17일로 60일째를 맞았다. 경인방송(iTV) 역시 방송권역이 줄어들어 생존 자체가 어려워졌다며 강력하게 항의해 왔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9일 KBS 1TV ''시사진단''에 출연해 "방송채널정책을 재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채널정책을 발표한 지 한 달도 안돼 애매한 입장으로 돌아선 것이다. 지난 14일엔 방송위원회의 행정을 총괄하는 나형수 사무총장이 "현재 상태로는 방송위원회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난국을 해결하는 길은 인적 쇄신뿐"이라며 사의를 밝혔다. 이날 실무를 담당하는 실·국장 6명도 사의를 표명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 16일 국회마저 방송위원회 정책을 불신하는 개정안을 내놓자 김 위원장은 자진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사퇴가 방송계의 혼란을 가라앉히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회 문광위의 법안심사소위가 24일 서울MBC와 SBS의 위성방송 재송신 여부를 어떤 식으로 결론짓느냐에 따라 위성방송사와 지역방송사간의 갈등이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계의 한 관계자는 "방송계 혼란은 전문성에 관계없이 여야 나눠먹기 식으로 선출된 9명의 방송위원들이 정치권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며 "방송위원회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조직이 되기 위해선 방송위원 구성방식 등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길 덕 기자 duk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