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靜中動)' 숲은 얼핏 봐선 가만히 정지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숲은 수많은 생명체들의 활동으로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는 거대한 유기체다. 그 숲의 변화는 수천년,수만년에 걸쳐 서서히 이뤄진다. 그래서 숲의 변화를 '천이(遷移)'라고 한다. KBS 1TV는 조용하지만 생명력 넘치는 숲을 다룬 자연다큐멘터리 '숲'(1월1일 오후 7시30분)으로 새해를 연다. 제작진은 1년 간을 강원도 일대와 광릉 수목원에서 보내며 숲의 다양한 모습을 취재했다. 덕분에 숲의 하루와 한 달 그리고 사계절의 변화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HD(고화질)TV로 제작돼 시청자들은 자연 그대로의 색과 미세한 소리까지도 즐길 수 있다. 이른 봄 얼어붙은 숲속 땅에 봄 햇살을 맞으며 얼레지 복수초 앉은부채 등이 피어난다. 얼레지는 공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식물.되도록 멀리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개미들이 좋아하는 '얼라이오좀'이라는 당분을 씨앗에 붙여놓는다. 그러면 땅바닥에 떨어진 씨앗을 개미들이 끌고가 얼라이오좀만 떼어먹고 씨앗은 버린다. 개미가 버린 얼레지 씨앗들은 숲 속 곳곳에서 싹을 틔운다. 한 여름의 어둡고 서늘한 숲은 전쟁터다. 식물들 간의 싸움에서 승자는 역시 높이 자란 거목.독재자로 보이기 쉬운 거목이지만 그것 역시 여름 전쟁터 한 가운데 있다. 거목을 중심으로 온갖 곤충들과 새들이 모여들어 생존을 위한 싸움을 펼친다. 이 과정에 거목은 자신의 모든 것들을 다른 생물들을 위해 희생한다. 이런 거목의 희생은 가을에도 계속된다. 도토리 열매를 맺은 참나무는 해마다 열매가 채 익기도 전에 가지째 잘려나간다. 그것은 도토리 안에 알을 낳는 도토리거위벌레의 번식 전략 때문이다. 그나마 남은 도토리는 청설모 다람쥐 어치의 몫이다. 청설모와 다람쥐는 겨울철 양식으로 쓰기 위해 곳곳에 밤과 도토리를 묻어 놓은 후 그 사실을 잊어버려 이듬해 봄 어린 나무가 태어날 수 있게 한다. 길 덕 기자 duk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