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의 견인차"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심장 베이징. 화려한 고층빌딩과 고급 자동차 행렬이 대로를 메우고 있지만 대다수 서민들의 주요교통수단은 여전히 자전거다. 그런 의미에서 자전거는 "중국의 진정한 현재"를 대변한다. 중국 신세대 왕샤오슈아이 감독의 영화 "북경자전거"는 자전거를 통해 중국 청소년들의 꿈과 좌절을 꾸밈없이 드러낸 영화다. 올해 베를린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은곰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2차대전후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작품 처럼 베이징의 누추한 뒷골목 풍경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중국당국은 베이징의 발전상을 외면했다는 이유로 아직도 개봉을 허락지 않고 있다. 주인공은 17살짜리 두 소년 구웨이와 지안. 시골출신으로 특송회사에 근무하는 구웨이에게 자전거는 생계수단이자 재산목록 1호다. 자전거로 열심히 배달해 언젠가 남부럽잖게 살 날을 고대한다. 도시빈민 소년 지안에게는 자전거가 사교와 데이트에 필수품이다. 자전거를 통해 친구들과 어울리고 여자친구와도 사귄다. 이들에게 자전거는 단순한 기호품을 넘어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 그 자체다. 구웨이가 어느날 도둑맞은 자전거를 지안이 암시장에서 사면서 "자전거쟁탈전"이 벌어진다. 이들은 서로 자신이 임자임을 내세우다가 마침내 타협한다. 하루씩 번갈아 타는 공유하는 방식이다. 이란영화 "천국의 아이들"(감독 마지드 마지디)에서 운동화를 교대로 신고 달리던 오누이를 연상시킨다. 구웨이가 지안 친구들에게 린치를 당하면서도 자전거를 꼭 붙들고 놓지 않는 장면은 시사적이다. 자전거를 포기하는 것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모두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전거는 무참히 박살난다. 지안은 자전거를 인연으로 얻은 애인이 더 좋은 자전거로 멋진 묘기를 펼치는 남자에게로 떠나자 그 남자를 벽돌로 내리친다. 이에 그 남자의 친구들이 몰려와 집단앙갚음을 하는 과정에서 자전거가 망가지는 것. "망가진" 자전거는 개인적으로는 "꿈의 좌절"이며 사회경제적으로는 "성장의 그늘"을 상징한다. 슬로모션으로 처리된 마지막 장면이 그것을 보여준다. 구웨이가 박살난 자전거를 안고 대로변 자동차 숲으로 지나가는 모습이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개방정책으로 "베이징"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고통스럽고 그들의 작은 꿈은 짓밟히기 쉬운 것이다. 구웨이가 동경하던 부잣집 식모도 주인옷을 입고 돌아다니다가 쫓겨나고 만다. 구웨이가 배달차 화려한 호텔을 방문했을때 호텔 종업원과 시비하는 장면도 빈부의 갈등을 형상화한 모습이다. 구웨이역의 추이린(崔林)과 지안역의 리빈(李濱)은 대사를 극도로 줄이고 표정만으로 연기한다. 말(言)을 생략한 채 보여주는 표현력이 탁월하다. 후반부에서에서 골목길 사이로 펼쳐지는 자전거추격신은 헐리우드영화의 자동차 추격신을 방불케할 정도로 박진감 있다. 17일 개봉.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