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정(33)은 요즘 초조하다.


주역을 맡은 새영화 "나비"(문승욱 감독.13일 개봉)에 대해 국내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해서다.


그는 지난 8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청동표범상)를 받아 한국영화계를 흥분시켰다.


한국배우가 해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는 87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강수연의 "씨받이"이후 처음.


"나비"는 산성비와 중금속에 오염된 미래의 서울에서 "망각의 바이러스"로 추한 기억들을 말끔히 지우고 싶은 안나와 그녀를 바이러스 세상으로 인도하는 가이드들의 이야기를 담은 SF영화. 안나역의 김호정은 절망에서 희망을 길어 올리는 몸짓을 절제됐지만 생동감있게 연기해 냈다는 평을 얻고 있다.


"살아있는 인물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친밀감이 느껴지고 공감도 얻을 수 있는 연기를 생각했지요"


연극배우출신인 김호정은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세차례나 수상한 탄탄한 연기력을 지녔다.


이 영화에서는 낙태의 죄의식,그로부터 벗어나고픈 처절한 몸부림,잉태하고픈 순화된 감정 등을 표정과 몸동작으로 세필화처럼 옮겼다.


"디지털제작"방식과 문승욱감독의 사실주의적 연출기법도 돋보인다.


촬영전 리허설은 없었다.


일단 상황이 주어지면 배우가 스스로 반응했고 2대의 디지털카메라가 이를 추적하는 방식이었다.


"연기한다"는 생각이 사라질때까지 배우들의 움직임이 계속됐다.


김호정은 "프레임 안에 있는 느낌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캐릭터를 미리 설정하는 것이나 연기적 상황을 만드는 것을 철저히 배격했다"고 말했다.


지친 심신을 드러내야하는 장면에서는 실제로 육신이 지치도록 반복적으로 연기했다.


한가지 대사를 건지기 위해 30분동안 거듭 도전하는 혹독한 강행군이 지속됐다.


제작팀은 3일 찍고 3일 휴식을 갖는 일반적 제작패턴에서 벗어나 3일찍고 하루 휴식을 가졌다.


크랭크인에 앞서 그는 라스폰트리에 감독의 "백치"를 보고 텍스트로 삼았다.


영화가 "꿈의 공장"이 아니라 "현실의 터전"임을 강조하는 "도그마이론"이 이번 작품의 기저에 깔려 있어서다.


"촬영도중 시종(始終)을 알리는 "액션"이나 "컷"이란 구호가 없었어요.


감독이 저에게 연기를 원한게 아니라 상황에서의 반응을 원했기 때문이죠"


주요 장면들은 대부분 핸드헬드(손으로 카메라를 든 채)방식으로 찍혀졌다.


실감나는 현장과 그곳에서의 배우 연기를 민활하고 사실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파도치는 바다에서 안나가 가이드(강혜정)의 출산을 돕는 시퀀스는 출렁대는 쇼트에 생명의 기운이 역동적으로 묘사됐다.


이 영화는 형식상 SF영화지만 공상과학과 기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드라마다.


이 작품은 밴쿠버영화제와 런던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