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제가 상을 탄 게 믿기지 않아요."


올해 한국 영화계는 또 한 명의 연기파 배우를 발견했다.


문승욱 감독의 영화「나비」로 올해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김호정(33)씨가 그 주인공.


해외에서 먼저 그녀를 알아보고 상을 줬으니 엄밀히 말하면 `발견'이라기보다 `인정'에 가깝다.


그녀가 주연한「나비」가 오는 10월 13일 국내 관객들을 찾는다.


기억과 망각, 상처와 치유에 관한 영화인「나비」에서 김호정은 잊고 싶은 기억만을 지워주는 `망각 바이러스'를 찾아 한국에 온 독일 교포 `안나'역을 맡았다.


안나는 이 곳에서 자신보다 더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관광가이드 소녀 `유키'(강혜정)와 택시 운전사 `K'(장현성)를 만나면서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게 된다.


"상처를 안고 사는 평범한 인물들, 다양한 인간군상에 관한 이야기에요. 누구나 상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상처를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요."


로카르노영화제 수상 소식이 처음 국내에 전해졌을 때 사람들은 대뜸 `누구야?'라고 했을 정도로 그녀의 이름은 국내 관객들에게는 아직 낯설다.


그러나 김호정은 동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10년 연기 경력을 지닌 연극계의 베테랑 배우.


연극「아, 이상」「꽃잎 같은 여자 물 위에 지고」「바다의 여인」등으로 백상예술대상에서 세 차례나 수상했을 정도로 대학로에서는 이미`스타'다.


영화 출연은「플란다스 개」「침향」에 이어 이번이 세 번 째.


여배우로서는 다소 늦은 나이에 충무로에서 진가를 발휘할 수는 있었던 것도 탄탄한 연기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김호정이 맡은 `안나'는 어떤 사연때문에 뱃속의 아이를 지운 과거가 있고, 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해 항상 고통스러워하며 우울해하는 인물.


납중독 소녀 `유키'의 출산을 도우면서 절망적인 삶 속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영화에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촬영 기간 내내 (배역에 몰입해) 인상을 쓰고 있었습니다. 웃지 않았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나는 누구일까'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자연스런 연기를 원했던 문감독의 연출 스타일 때문에 `베테랑' 김호정도 호되게 당한 듯 했다.


공포스러운 장면을 찍을 때면 세트장을 완벽하게 무섭게 만들어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반응할 때까지 감독은 몇 시간이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좀처럼 `안나'에서 `김호정'으로 돌아갈 시간적 여유를 주지않았던 강행군도 지치게 했다.


"촬영 전에 덴마크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백치들」이란 영화를 봤어요. 배우들을 극단의 한계까지 이르도록 한 점이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인물 하나 하나가 살아있다고나 할까요. 저도 남한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진실한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닌) `연기'를 하면 감독님도 `연기하지 마라'며 저를 철저하게 뭉겠고요(웃음)"


극 중 추운 겨울 바다에서 유키의 출산 장면을 찍고 나서는 모두 실신했다고 했다.


영화를 본 뒤 `배우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도 괜한 생각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연극「첼로와 케첩」공연을 마친 김호정은 "앞으로 연극이든 영화든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가리지 않겠다"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