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일관 '인간'에 대한 관심을 작품세계에 관철시켜온 실향민 화가 황용엽(70)씨의 개인전이 25일-10월 13일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린다. 오광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선묘(線描)의 마술사'라고 평가한 황씨는 평생동안 실존적 한계상황에 직면한 인간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왔다. 60년대 짓눌린 듯한 신체와 얼굴을 한 인물들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한 '인간'연작은 70년대 많은 선들을 중첩시킨 화면과 복잡한 끈에 붙들려 겨우 서 있는 꼭두각시 같은 나신(裸身)의 인간으로 변했다. 80년대 초반 한결 간결해진 화면을 선보이던 황씨는 중반 이후 고분벽화의 장식적인 당초문의 유려한 문양을 작품에 끌어들이는 한편 밝은 색채를 사용해 이전까지의 비극적인 화풍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평양 출신으로 6.25 동란 중 그림에 대한 열정만으로 혈혈단신 월남한 황씨는 그 뒤 국군으로 전쟁에 참가했다가 1년 6개월여만에 다리에 총상을 입고 제대했다. 황씨는 "당시 1천여명의 전우 중 800여명이 전장에서 숨졌다"며 "전쟁이라는 극한적 상황은 이후 내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회고한다. 평양미술대 재학 중 월남한 그는 이후 홍익대에 편입해 이상범, 김환기, 윤효중, 유영국 등에게 수업을 받으며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전쟁 직후에는 미군 부대에서 나온 꿀꿀이죽과 미군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받은 돈으로 연명하기도 했고 숙명여고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으며 군수품, 도자기 회사 등도 다녔다. 한때 '인간' 연작만 그린다는 이유로 '미친놈'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는 '앙가주망'이라는 단체에서 잠시 활동한 것을 빼면 어떤 단체나 유파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꾸준히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그의 유일한 수상 경력인 제1회 이중섭 미술상(89년)에 대해서도 그는 "평생 공모전에는 한번도 응모해본 일이 없어 상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그나마 작품이 아닌 작가에 주는 상이라 탈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도 여전히 '인간'을 테마로 하고 있다. 그러나 "배색에 있어 섬세한 조율과 밝아진 화면에 과거의 절제되고 단순하면서도 뉘앙스가 풍부한 화면의 질서를 조심스럽게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미술평론가 이재언의 평가다. ☎ 734-0458.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sisyph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