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달콤쌉싸름한 로맨틱 코미디 한편이 초가을 연인 관객에게 손짓한다. 15일 간판을 내걸 「소친친(小親親)」은 남성우월주의자 라디오 DJ와 페미니스트 칼럼 작가의 한판 승부를 맛깔스럽게 그려낸 영화. 「천녀유혼」 「황비홍」 「첨밀밀」 등의 미술감독 출신인 시종웬(奚仲文) 감독이 「친니친니」에 이어 내놓은 신작이다. 이야기는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는 루나 오가 골동품가게에 들렀다가 진열대에서 자신이 첫사랑에게 선물한 낡은 LP판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루나는 당장 이를 되사려고 하지만 이미 낯선 남자가 예매해놓은 상태. 첫사랑에게 따지려고 전화를 걸어도 그는 이미 캐나다로 떠나고 없다. 분한 마음을 삭이며 라디오를 듣고 있는데 인기 절정의 DJ 쯩영이 "어떤 철모르는 여자가 첫사랑의 판을 사겠다고 했지만 박살낼 것 같아 팔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루나는 이튿날 신문에 그를 '냉혈한'이라고 비난하는 글을 실어 반격을 가하면서 본격적인 사랑 다툼이 시작된다. 이쯤 되면 관객들은 계속되는 공방전 속에서 '미운 정'이 싹터 서로의 매력에 빠져들다가 몇번의 위기를 겪고 난 뒤 해피엔드로 마감한다는 판에 박은 공식이 머리 속에 떠오를 법하다. 그러나 「첨밀밀」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안시(岸西)가 호락호락하게 관객을 놓아둘 리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친친」도 로맨틱 코미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하지는 않지만 '둘이 이대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걱정 때문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올때까지 마음을 졸이게 만든다. 시종웬은 왕자웨이(王家衛)와 천커신(陳可辛)의 뒤를 잇는 '홍콩 멜로영화 계보의 적자(嫡子)'라는 찬사에 과장이 없음을 느끼게 할 만큼 이 영화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다. 젊은이의 기호에 맞게 빠른 템포와 감각적인 영상을 구사하면서도 50을 넘긴 나이에 걸맞게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에디트 피아프와 냇킹 콜의 노래로 인스턴트 사랑에 익숙한 CD세대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애완견을 두고 벌이는 포복절도할 중년 커플의 줄다리기도 양념 이상의 깊은 맛을 담고 있다. 중고 레코드판이 두 주인공을 잇는 매개물이라면 빛바랜 하얀 우산은 루나의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 새 것을 사기 위해 실수를 가장해 버렸다가 이내 아쉬워 다시 찾는 것을 반복하는 모습에서 그에게 맞는 사랑 방정식의 해답을 유추할 수 있다. 여전히 홍콩 '4대천왕'으로서의 관록이 녹슬지 않은 궈푸청(郭富城)의 능글맞은 연기력과 표독스러운 듯하면서도 따뜻함을 지닌 천헤이린(陳慧琳)의 통통 튀는 매력을 대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