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 현존하는 우리나라 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상하이(上海)여 잘있거라」와 일제시대의 유일한 항일영화 「애국혼(愛國魂)」이 한국 영화사 작품목록에 당당히 오르게 됐다. 영화인들이 일제 강점기에 해외에서 영화로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밝혀낸인물은 역사학자나 영화인도 아닌 방송 프로듀서. 현재 EBS TV의 「건강 클리닉」을연출하고 있는 안태근(安泰根ㆍ45) PD는 한국외국어대 정책과학대학원 석사학위논문「일제 강점기의 상하이파 한국 영화인 연구」를 통해 공백으로 남아 있던 1920∼1930년대 한국 영화사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지난 97년 EBS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일제 강점기의 영화」를 제작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중국 상하이에서 우리나라 영화인들이 활약했다는사실을 접한 뒤 본격적으로 연구에 나서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99년 대학원에 입학했다. 그는 지난 2년간 중국을 4차례나 드나들며 자료를 수집하고 증언자들을 만나 상하이파의 활동상을 재확인하는 한편 미공개 기록들을 발굴하는데 성공했다. 1920년대 말 일제의 영화검열이 강화되자 영화인 중 일부가 상하이로 건너가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과 「상하이여 잘있거라」 필름의 존재는 97년 특집 다큐멘터리에서도 3분 가량 단편적으로 소개됐으나 이번 논문에서 그 배경과 의미, 작품 목록 및 내용 등이 온전히 밝혀졌다. 상하이파 영화인의 대표적 인물은 정기탁(鄭基鐸). 그는 1928년 안중근 의사의일대기를 그린 「애국혼」과 1934년 「상하이여 잘있거라」를 비롯해 12편의 영화에서 각본ㆍ감독ㆍ주연을 맡았다. 정기탁은 1934년 「상하이여 잘있거라」의 서울 개봉을 위해 귀국했다가 의문사했으며 전창근ㆍ이경손 등 나머지 상하이파 영화인들의 활동도 1937년 제2차 상하이사변 발발과 함께 상하이가 일제에 점령되면서 막을 내렸다. 안태근 PD는 "생존자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영화학자들에게만 연구를 미룰 수없다는 생각에서 직접 나섰다"면서 "상하이파의 영화가 비록 중국에서 만들어지기는했으나 주요 스태프와 출연진이 모두 한국인인데다가 주제나 소재도 한국인의 정서를 반영한 것인 만큼 당연히 한국영화사에 올라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외대에서도 영화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해 안태근 PD의 논문을 최우수논문으로 선정, 24일 후기학위수여식에서 상장을 전달한다. (서울=연합뉴스) 이희용기자 heey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