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학에는 "이름이 곧 몸이요, 몸이 곧 이름"이라는 말이 있다. 이름이 후천운을 좌우한다는 성명학의 이론은 적어도 영화제작사 "명필름"에 비추면 "참"이다. 그 이름대로 "빼어난 영화"를 만드는 "유명한 영화사"가 됐으니 말이다. 충무로에 입문한지 10여년만에 "명가"를 일군 심재명(38) 명필름 대표. 이제 그는 영화계의 파워우먼이자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목록에서 빠지지 않는 명사다. "코르셋" "접속" "조용한 가족"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해피엔드" "섬" "공동경비구역 JSA". 내놓는 영화마다 "알찬 결실"에서부터 "어마어마한 대박"까지 성공을 거뒀다. 심 대표는 1963년 서울에서 2남2녀중 둘째(장녀)로 났다. 어린시절 아이답지 않게 야무지고 차분했던 그는 그림과 글쓰기에 남다른 재주를 보였다. 타고난 문화.예술적 취향은 그를 영화를 몹시도 좋아하는 "영화소녀"로 키웠다. 중학교 때부터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봤고 영화를 보고 나면 일기에 감상문을 빼곡이 적었다. 감상문 쓰기는 대학졸업 때까지 10년 넘게 이어졌다. 동국대 국문과에 진학한 후엔 광고쪽에 관심을 뒀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1순위 취미". 영화잡지의 대학생 모니터로 활동하며 공짜영화를 즐겼고 프랑스문화원의 영화동호회 "씨네클럽"에 가입해 좋은 영화를 스폰지처럼 흡수했다. 졸업후 출판사에서 4개월쯤 일하던 그에게 88년 운명과도 같았던 광고 한줄이 눈에 띄었다. 서울극장의 "영화 카피라이터 모집". 평소 동경했던 영화와 광고를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다. 광고사 입사를 준비하며 갈고 닦은 소질이 극장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합격통보를 받았다. 장래 "명가"의 여주인이 영화계에 발을 딛는 순간이었다. "아주 작고, 순한 인상의 아가씨"는 며칠씩 밤을 새는데도 거뜬했다. 물론 실력도 인정받았다. 서울극장 시절 광고 홍보 배급을 두루 배운 그는 90년 영화제작사인 극동스크린 기획실장으로 스카우트돼 "사의 찬미" 등을 기획하며 한국영화 제작 전반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1992년 심 대표는 한국영화 기획.홍보사인 명기획을 설립하면서 독립노선을 탔다. 당시 영화의 핵심과 매력을 절묘하게 짚어 포장해내는 그의 마케팅 감각은 충무로에 많은 화제를 뿌렸다. 그가 만들어내는 "맛깔난" 카피들은 영화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결혼이야기"의 카피 "잘까 말까 끌까 할까"는 공전의 히트작. 신혼부부의 침실풍경을 간결하면서도 확실하게, 은근하면서도 섹시하게 잡아낸 카피는 영화광고의 "명작"으로 꼽힌다. 이후 "세상밖으로" "닥터봉" "그대안에 블루" 등이 그의 손을 거쳐나갔다. 인생의 동반자이자 사업의 동지인 남편 이은 감독(남편은 당시 독립영화 "장산곶매"에서 영화운동을 하고 있었다)을 만나 결혼한 것도 이 무렵이다. "내친김에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고 싶었다"는 결심에 심 대표는 95년 드디어 혜화동 아담한 한옥에 "명필름"의 간판을 내걸면서 "명가"로의 첫발을 디뎠다. 하지만 첫 작품 "코르셋"은 이른바 주류영화가 아니어서 애를 먹었다. 처음 제작을 하겠다고 나선 젊은 여자에게 쉽사리 제작비를 대줄 투자자들이 없었던 것. 돈이 있을 만한 사람들은 찾아갈 때마다 번번이 거절했다. 게다가 당시 그는 임신한 몸이었다. 심 대표는 그러나 몇시간씩 사무실밖을 지키며 기다릴만큼 강단을 보였다. 그러기를 10여차례. 지치거나 물러설 줄 모르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근성있는 여자"(영화계 전문용어로는 "독한 X"다)라 평하기 시작했다. 그는 결국 "끈기" 하나로 제작비를 확보, "코르셋"을 만들어냈다. 이 작품은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선한 영화로 주목받았고, 심 대표는 충무로에서 조금씩 신뢰를 얻어갔다. 마케팅은 물론 시나리오를 보는 탁월한 안목은 "해피엔드" "조용한 가족" 등 당시 다른 영화사들이 거들떠 보지 않던 시나리오를 골라내 히트시키는 결실로 이어졌다. 심 대표의 초기부터 모습을 지켜본 한 영화인은 "현재 심재명이 이뤄낸 성과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되, 현실에 닿아 있으면서도 새로움을 담아낸다는 원칙이 옳았던 것 같아요. 가족(남편 이은 감독은 명필름의 공동대표며, 동생 심보경씨는 명필름 기획이사다)들의 도움도 컸고, 환경적인 운때도 잘 맞아주었구요. 하지만 5년동안의 결과물 7편을 놓고 성공을 말하기는 이르지요" 남편과 함께 올해 미국 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버라이어티"가 "주목할만한 10인의 제작자"로 선정됐을 만큼 국내외에서 인정받기에 이르렀지만 역시 담담할 뿐이다. "상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더 기쁠 것도 없어요. 행복한 순간은 그저 좋은 스태프들과 공들여 만들어낸 결과물이 만족스러울때, 힘들여서 만든 영화가喚눗?소통했을 때입니다. 후배들에겐 허황된 환상을 버리라는 말부터 하고 싶습니다. 필수적으로 투자해야 할 충분한 시간을 견딜 수 있는 끈기와 인내력이 가장 필요합니다" 심 대표는 예전부터 뜻을 두었던 동시제작시스템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하반기중 영화 4~5편의 제작에 들어간다. 올초 신세대 전문영화사인 자회사 디엔딩 닷컴을 설립하는 등 사업다각화에 나선 것도 이같은 목표를 위해서다. "양질의 콘텐츠를 꾸준히 내놓는 제작자가 돼야지요. 10년, 20년 후에도 "명필름"이 관객들에게 항상 신뢰를 주는 이름으로 남았으면 합니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