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는 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에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수필 ''인연'' 중에서)

원로 수필문학가 금아(琴兒) 피천득(90) 선생의 요즘 살아가는 모습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만나볼 수 있게 됐다.

SBS 러브FM(103.5㎒)은 31일 방송되는 ''책하고 놀자''(오전 11시5분)에 피천득 선생을 특별 초대한다.

제작진은 90세가 넘은 선생을 위해 지난 28일 직접 방송 장비를 들고 서울 반포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가 녹음했다.

진행은 소설가 김영하씨와 SBS 8시뉴스 앵커인 한수진 아나운서가 맡았다.

1910년생인 선생은 이제 ''작고 왜소한 할아버지''가 돼버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엔 자신의 수필만큼이나 단아하고 맑은 기운이 묻어난다고 제작진은 소개한다.

선생의 미소 역시 아직 어린 아이의 그것이지만 1세기 가까운 세월 때문에 얼굴 군데군데 검버섯이 피었다.

반포 그의 집 역시 소박하기 그지 없다.

오래된 저층 아파트 2층에 위치한 30여평 집에 그와 아내만이 살고 있다.

이웃에게 피해주기 싫다는 선생의 배려 때문에 벽에 못을 박지 않아 그림과 액자는 벽에 기댄 채 바닥에 놓여 있다.

거실 옆 서재엔 영문학자답게 많은 영문 서적들이 책장의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선생이 가장 사랑하는 딸 ''서영''씨가 그에게 써준 ''아빠 몸 조심''이란 표어 역시 방 한구석에 놓여 있다.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먼의 흑백사진 두 장도 책장 위에 올려져 있다.

두보,도산 안창호 선생 등의 초상화와 르누아르의 화집도 눈에 띈다.

서재 옆 방 침실엔 딸이 어릴 적 미국에서 사온 인형 난영이가 있다.

선생은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딸을 그리며 아직도 난영이를 날마다 목욕시키고 밤이면 이부자리를 봐준다고 한다.

선생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이 프로그램엔 그의 주변 사람들이 나와 가족과 친구가 본 ''인간 피천득''을 소개한다.

국회의장을 지낸 친구 김재순씨와 후배 문인 최인호씨,샘터 사장 김성구씨,차남 피수영 중앙병원 소아과 과장 등이 인터뷰를 통해,또는 게스트로 등장해 선생의 과거와 현재를 말한다.

수필 ''인연''의 주인공 ''아사코''에 대한 선생의 기억과 현재의 심정도 소개된다.

길덕 기자 duk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