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괴짜감독 아끼 까우리스메끼(41)의 영화 두편이 영화팬을 찾아온다.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21일부터 열릴 "아키 카우리스메끼의 걸작 vs 졸작"전.

상영작은 자본주의를 겨냥한 블랙코미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89년)와 비극적 삶을 섬뜩하리만치 무감한 시선으로 바라본 "성냥공장 소녀"(89년)다.

"레닌그라드..."는 96년 국내 개봉후 비디오로도 출시됐고 "성냥공장..."은 국내에서 정식으로는 첫선이다.

감독은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레닌그라드..."를 "실베스타 스탤론 영화를 제외하면 영화사를 통틀어 최악의 영화"라 혹평하곤 "성냥공장 소녀"를 자신의 최고 걸작으로 꼽았다.

같은해 전혀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진 두 작품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크겠다.

만든지 10년도 더 지났지만 독특한 향미가 바래지 않은 작품들이다.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원제:Leningrad Cowboys Go America) 핀란드의 황량한 벌판.무너질 듯한 창고안에서 꿍딱거리는 음악이 들려온다.

안에서는 괴상한 차림새의 밴드가 연주중이다.

딱따구리 부리처럼 세운 앞머리,머리모양처럼 코가 뾰족한 기이한 구두(사실 국내에서 최근 이런 스타일의 구두가 일명 "피구두"라 하여 유행하기도 했다).무심한 얼굴로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는 이름하여 "레닌그라드 카우보이".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흥행업자는 "미국에나 가보라"고 권한다.

쓰레기같은 것들도 얼마든지 팔 수 있는 곳.매니저의 지휘아래 밴드는 풍운의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장도를 떠난다.

미국으로 간 핀란드 시골 밴드가 각지를 돌며 벌어지는 소동을 담은 로드무비 "레닌그라드..."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조롱하는 신랄한 풍자다.

매니저의 "착취"나,밴드들이 일으키는 "혁명"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로 읽힌다.

"꿈의 땅" 미국은 북구 벌판만큼이나 황량하고 윤기없다.

그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이방인 밴드만큼이나 자본주의에 소외된 이방인이다.

"성공"을 위해 록큰롤 컨트리 하드록 블루스 라틴음악까지 섭렵하던 밴드는 멕시코에 가서야 꿈을 이룬다.

따뜻한 환대와 음악적 성공."죽은 사람까지 관에서 벌떡 일으켜 세울만큼 생기로 넘치는 멕시코는 어쩌면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 일지도 모른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다소 낡아보일만한 주제지만 영화는 즐겁다.

시트콤처럼 엉뚱하고 기발한 상황들로 엮어가는 이야기는 황당하지만 꽤나 익살맞다.

조상이라며 보여주는 링컨대통령 사진이나 관뚜껑밖으로 삐죽 내민 머리털과 구두부리처럼 감독의 괴팍하기까지한 유머감각은 폭소와 실소를 번갈아 터뜨려낸다.

한바탕 웃음뒤에는 씁쓸한 성찰이 따라온다.

음악의 성찬도 매력있다.

밴드는 핀란드 록그룹 "슬리피 슬리퍼즈"다.

미국 인디영화의 기수인 짐 자무쉬 감독이 친구 감독을 위해 중고차 판매원으로 깜짝 출연한다.

감독은 "졸작"이라 했지만 대중들에게는 훨씬 친근하게 다가설 만 한다.

<>성냥공장 소녀(원제:The Match Factory Girl)

아이리스는 성냥공장에서 일한다.

아침마다 출근도장을 찍고 하루종일 홀로 기계와 씨름을 한다.

그날의 일당은 계부와 어머니에게 고스란히 내어준후 살림 뒤치닥거리를 한다.

적막한 집안에서 부모들은 마냥 TV만 바라본다.

기계가 토해낸 납작한 성냥갑속에 갇힌 성냥처럼 소녀도 납작하고 숨막히는 삶속에 가둬져있다.

그런 여자에게 "댄스홀"은 욕망의 공간이다.

인간다운 "온기"를 얻고싶은 욕망.하지만 볼품없는 외모탓에 아무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다.

한껏 치장을 한 어느날 한 남자가 다가온다.

풍요롭고 화려하게 살아가는 남자는 여자에게 하룻밤의 유희로 생긴 아이를 지우라고 말한다.

절망의 끝.여자는 초강력 쥐약을 타서 주위사람들에게 복수의 독배를 돌린다.

"성냥공장..."은 구질구질하고 희망 한점 줏어올릴 여지없는 삶의 비극을 건조하게 비춰낸다.

몇마디도 되지 않는 짤막한 대사들을 무표정하게 읊는 인물들에게서 인간의 냄새를 맡기란 쉽지 않다.

단 한번 소녀의 눈밑에 범벅진 눈물을 보여주지만 그조차도 마른 물기처럼 느껴진다.

영화시작 20분동안 들리는 대사라곤 "맥주"라는 한마디뿐이다.

감정을 완전히 걷어낸 시선으로 비추는 고독하고 비참하고 참담한 인생사는 오히려 더 현실적이어서 소름끼친다.

"성냥공장..."역시 노동계급의 팍팍한 삶에 주목한다.

부르조아 남자는 여자노동자를 하룻밤 노리개로 삼은 후 가차없이 버린다.

여자가 "편안하게" 저지르는 "살인"(사실 살인인지조차 알 수 없다)의 앞뒤엔 "모든 것을 주고 실망할때에는 더 괴롭다"는 노래가 울려퍼진다.

동화속 성냥팔이 소녀가 가진 성냥을 태워 잠깐의 온기를 얻었듯 성냥공장 소녀는 복수를 통해 잠깐이나마 평안을 얻는다.

인간들의 부조리한 삶의 본질에 꽂히는 날카로운 성찰은 섬짓하지만 여운깊다.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