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으로 환생한 첫사랑과의 만남을 그린 한국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신선한 아이디어로 소리소문없이 화제가 되면서 서울 관객수만 50만명을 바라보고 있다.

최근 미국의 주간 종합엔터테인먼트 전문지 버라이어티에도 소개되며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번지점프를 하다"는 어쩌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던 작품이다.

동성애 장면이 들어가있다는 이유로 제작이 여러번 보류됐다.

하지만 결국 눈엔터테인먼트사가 설립되면서 제작에 들어갔고 큰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그 뒤엔 영화제작비 26억원을 전액 투자한 벤처캐피털 KTB네트워크가 있었다.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과감한 투자를 망설이지 않는 벤처캐피털이 영화산업에서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경우만이 아니다.

지난해 제작된 영화 58편 가운데 벤처캐피털이 만든 영화투자 전문펀드의 투자를 받은 작품은 23편에 달한다.

올해도 40여편의 영화에 3백20억원 이상이 투자될 것으로 중기청은 예상하고 있다.

영화투자에는 KTB네트워크를 비롯 산은캐피탈 드림벤처캐피탈 등이 앞다퉈 나서고 있다.

<>영화투자의 특징=투자를 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과정이 일반 벤처투자와는 약간 차이가 난다.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투자는 세심한 사전 실사(듀 딜리전스:Due Diligence)를 거친 뒤 기업의 성장가능성과 가치를 총괄적으로 판단해 투자심사를 한다.

반면 영화투자는 제작사의 능력도 보지만 투자할 영화 자체의 시나리오나 흥행 가능성을 우선 따진다.

개별 영화의 성공가능성에 촛점을 맞춘다는 면에서 개별 프로젝트에 투자를 한 뒤 투자 지분율에 따라 수익을 나눠갖는 "프로젝트 파이낸싱(Project financing)"방식 투자에 가깝다.

자금투입 시기 등도 기업 대상의 벤처투자와는 좀 다르다.

일반적인 벤처투자는 한꺼번에 투자자금을 주고 또 필요에 따라 몇 차례 추가로 투자를 하게 된다.

영화투자는 <>시나리오기획(5~10%) <>촬영 등 영화제작(50~60%) <>영화개봉전 마케팅(30~40%) 등의 영화제작 단계별로 금액을 나눠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자금회수도 개봉관에서 상영을 마친 뒤에 수입이 들어오고 또 몇 달 후에 비디오나 애니메이션 TV판권 등으로 수입이 발생하게 된다.

<>영화투자의 명암="무엇보다 투자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기간이 짧다는 게 요즘 큰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요.

경기전망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장기 투자를 꺼리고 있는 벤처캐피털들이 우선 관심을 가질만 하죠"(윤정석 산은캐피탈 엔터테인먼트 팀장)

일반적으로 영화투자는 1년 정도면 성공했건 실패했건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단기간에 승부를 낼 수 있는 그야말로 "고위험 고수익(High Risk,High Return)"투자다.

하지만 투자자금을 완전히 날릴 가능성은 거의 없고 투자자금이 몇년간 묶일 위험도 많지 않다.

또 잘만 되면 해외수출 길까지 열려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를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PR효과도 크다.

하지만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영화투자도 내실을 찾은 것은 최근 일이다.

영화관이 관객으로부터 입장료를 받은 다음 그 실적을 집계해 벤처캐피털에 수익을 배정하는 게 일반적인 관행.하지만 "몇 년전만해도 집계가 누락되거나 정확하게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영화는 성공해도 투자사들은 별다른 수익을 올리지 못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게 한 영화전문 벤처캐피털리스트의 귀띔이다.

"소문난 잔치(대박영화)에 먹을 것(수익) 없다"는 말이 종종 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성공한 영화만 알려져서 그렇지 대개 10편을 투자하면 1~2편은 "대박",2~3개는 본전,나머지는 손해를 보는 게 일반적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영화투자 열기 계속 될까=영화투자가 붐인 것은 분명하다.

가장 적극적인 KTB네트워크는 지난해 무려 2백35억원 가량을 영화부문(애니메이션 포함)에 투자했다.

이 가운데 9억1천만원을 투자한 "JSA(공동경비구역)"은 서울에서만 2백50만명의 관객을 유치해 3백%의 투자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KTB네트워크는 올해도 2백억원을 영화(1백70억원)와 애니메이션(30억원)에 투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특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봇물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투자 전문 펀드는 영화투자 열기가 식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지난 한 해만 무한영상벤처조합(1백15억원) 코웰멀티미디어(1백억원) 드림영상1호(1백35억원) 등 8개의 영화펀드가 결성돼 금액으로 따지만 9백억원에 이르는 규모의 재원이 확보됐다.

드림벤처캐피탈 이태영 이사는 "올해도 드림벤처캐피탈 산은캐피탈 무한기술투자 등이 추가적인 영화펀드 결성을 추진하고 있어 불붙기 시작한 영화투자 열풍에 기름을 붓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