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조각가 류인(1956-1999)의 사후 첫 추모전이 31일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대표작 20여점과 설치작업 "황색음-묻혔던 숲"을 선보인다.

류인은 인체를 해부한 대형조각을 통해 강한 메시지를 던져줬던 작가다.

그의 작품에는 인체의 특정 부위가 왜곡 변형되거나 또는 생략돼 있는 게 특징이다.

기이하게 뒤틀려 있거나 흉칙하게 절단된 남성 인체들은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인간을 마치 "고기덩어리"처럼 표현했다.

하지만 고기덩어리같은 형상에선 강렬한 힘이 느껴진다.

로댕 조각을 보는 듯한 견고함과 생동감 그리고 강한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다.

홍대 미대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한 류인은 대학원 재학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8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을 시작으로 중앙미술대전 특선(1987년)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1990년)제1회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1993년)등을 수상,상복많은 작가로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는 1991년 자신의 역량을 집대성한 두번째 개인전으로 조각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어둠의 공기"(1989년)"급행열차"(1991년)등의 전시작을 통해 폭발할듯한 강렬한 힘이 돋보이는 탄탄한 조형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현대사회와 인간에 대한 고민을 인체의 해체나 왜곡 등을 통해 강렬하게 표현했던 것이다.

류인은 장식성 일변도나 내용 일변도의 조각을 거부했다.

관객과 함께 숨쉬면서 우리의 삶 자체를 반영한 "완벽한 조형성"을 추구하는데 주력했다.

미술평론가 최태만씨는 "그의 작품은 형상의 독설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인간 존엄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인본주의가 바탕에 깔려있다"고 평했다.

94년과 96년에 가진 3,4회 개인전은 그 이전보다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깔려있다.

간경화 등으로 병세가 점차 악화되면서 삶을 비관하는 작가 의식이 반영된 듯 하다.

그는 97년이후 단 한 점의 작품도 그릴 수 없는 처지였다.

미망인 이인혜씨에 따르면 류인은 몸무게가 45kg을 넘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신체적으로 나약한 그가 이처럼 표현력 강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추상회화의 거목이었던 부친(류경채)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부친과 다른 길을 걸었다.

"부친이 회화를 해서 저는 조각을 했고 아버님이 추상을 택해 저는 구상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조각행보는 "거목밑에 나무가 자라지 않는다"며 스승 로댕을 떠난 브루델을 연상시킨다.

동기야 어떻든 그는 "한국 현대조각의 작은 거인"으로 불릴만큼 조각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2월25일까지.

(02)736-1020.

이성구 기자 sk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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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인 - 굵은 발자취 남긴 요절 조각가 ]

조각 분야에는 류인처럼 요절한 작가들이 많다.

김복진 권진규 박희선이 바로 그들이다.

김복진(1901-1940)은 마흔,권진규(1922-1973)는 쉰 하나,박희선(1956-1997)은 마흔 하나에 세상과 이별했다.

미술평론가 최열씨는 "이들은 요절했다는 사실 말고도 한국 조소예술사에 굵은 발자취를 남겼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김복진은 전통 조소예술을 계승했고 권진규는 추상 조소예술 도입기에 홀로 구상 조소예술의 길로 나가 개성 넘치는 작품을 남긴 작가였다.

박희선은 추상 조소예술에 사회상황을 반영한 작품들을 남겼다.

류인은 권진규가 추구했던 인간의 소외와 고통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