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요즘 TV드라마는 화려한 영상과 음향의 성찬이 되어버렸다.

온갖 광고적인 카메라효과가 브라운관을 장식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기교가 묻어나지 않은 담백한 영상의 화려함이 더 빛을 발하기도 한다.

오는 27일 방송되는 KBS2의 TV문학관 "다리가 있는 풍경"(연출 이민홍 오후 11시)이 바로 이러한 드라마다.

전경린의 단편소설 "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15쪽 분량의 원작에 철권통치가 극에 달했던 70년대의 시대상을 덧입혔다.

이민홍 PD는 "80년대 이후 소설에서 스토리와 플롯이 붕괴돼 소설의 원작을 드라마화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이번 작품에서는 소설속 인물들은 드라마적 시각으로 재구성한데다 당시의 시대유감을 담아보려고했다"고 설명했다.

지수원 이휘향 도지원 하재영 등 출연진들의 탄탄한 연기력과 경남 함양과 전북 순창을 배경으로 한 빼어난 영상미가 돋보인다.

드라마는 사진작가인 인혜(도지원)가 딸과 함께 고향집 앞개울을 잇는 다리에 들어서면서 들려주는 나레이션으로부터 시작한다.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초라하고 이름없던 다리.1971년 가을,마을어귀의 낡은 다리를 건너 곱고 우아한 문계장(지수원)이 찾아온다.

아버지(하재영)의 대학시절 첫사랑이었던 그녀의 출현은 딸만 내리 넷을 낳은 어머니에게는 커다란 위협이었다.

군부통치의 암울한 시대상황과 사랑때문에 괴워하는 아버지,자신의 자리를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어머니,그리고 첫사랑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문계장.어머니는 문계장의 임신소식에 아기를 지우라고 협박한다.

어머니가 준 약을 먹고 자신의 눈앞에서 하혈하는 문계장을 본 인혜는 어머니를 남편의 사랑을 얻기위해 한 아기의 생명을 빼앗은 잔인한 사람이라며 원망한다.

그일 때문이었을까.

다섯째 아이를 임신한 엄마 역시 남동생을 사산하고만다.

그후 인혜의 가족도 문계장도 마을을 떠난다.

이 모든 아픈 과거의 기억들사이에 다리가 있었다.

어머니와 문계장 어느쪽도 택할 수 없어서 다리 중간에서 수없이 서성이던 아버지,이를 악물고 문계장을 찾아가던 어머니도 이 다리를 건넜다.

일부 원작이 갖는 문학적 향기가 부적한점이 없지 않으나 TV문학관 특유의 무기교가 자아내는 아름다운 영상과 드라마가 주는 여백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