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가 던져주는 감동은 리얼리즘 소설 못지않게 크다.

인간의 눈으로는 불분명해 보이던 것도 동물의 시선속에서는 단순명료하게 드러난다.

무거운 주제도 패러디 과정을 거치면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다시 태어난다.

유시어터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 ''홀스또메르''는 이런 우화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한 늙은 명마의 삶을 통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인류보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톨스토이의 우화가 원작이다.

홀스또메르는 힘차게 달린다는 뜻의 러시아말.

이름만큼이나 골격이 튼튼하고 어느 말보다 빨리 달리지만 얼룩빼기라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천대받는다.

바조프리하라는 암말과 사랑에 빠지지만 역시 얼룩빼기라는 이유로 암말은 그를 배신한다.

이에 격분한 홀스또메르는 바조프리하를 범하려다 마부에 의해 거세당하고 만다.

그는 이런 상처를 통해 우울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자신의 존재와 사람들에 대해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하지만 홀스또메르에게도 행운이 찾아온다.

그의 능력을 알아본 세르프홉스키라는 귀족과 함께 그의 생애에서 가장 화려한 날들을 보낸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결국 그는 다리가 부러지고 만신창이가 돼 다시 어린시절을 보낸 마굿간으로 돌아온다.

이 작품은 홀스또메르가 젊은 말들에게 자신의 지난날을 얘기하는 구조로 짜여져 있다.

사람이 회상한다면 뭔가 담담하고 ''세상은 원래 그런거야''란 투로 얘기할 것이다.

그러나 홀스또메르는 이성보다는 감성,속으로 감정을 삭이기보다는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짐승의 시선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어느 쪽이 더 자연스럽고 때묻지 않았을까.

극의 마지막에서 홀스또메르와 세르프홉스키는 똑같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데 홀스또메르의 살은 늑대와 들개의 배를 채워주지만 인간 세르프홉스키는 그저 무덤속에서 썩을 뿐이다.

인간과 그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재미있는 우화속에 알맞게 녹아든 작품이다.

함영준 각색,박승걸 연출,유인촌 김선경 정규수 등 출연.

오는 15일부터 내년 1월21까지.

(02)3444-0651

장규호 기자 sein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