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3위권의 애니메이션 제작국이다.

그러나 오랜기간 정착된 하도급 위주의 제작 시스템으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점점 위축되고 있다.

기획과 스토리보드 단계인 ''프리 프로덕션''은 빠진 채 실제 제작과정인 ''프로덕션'' 단계만 존재하는 왜곡된 구조가 지속돼왔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애니메이션 제작사나 종합엔터테인먼트를 표방한 영화사들이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부터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을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 대표적인 회사가 그리미 프로덕션.

이 회사는 최근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그룹인 미국의 랜드마크사가 추진 중인 애니메이션 기획 분야에서 국내에선 유일하게 전략적 파트너로 선정됐다.

랜드마크는 그리미 프로덕션이 제작하고 있는 ''기파이터 태랑''을 자체 배급망을 통해 전세계 시장에 판매하기로 했다.

국내 애니메이션이 완성 전 해외수출에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어 관련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에선 지금까지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을 이끌어왔던 유성웅(58) 회장이었기에 이같은 결과가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우리 업계도 이제 하도급구조에서 벗어나 창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입니다.

무엇보다 체계적인 기획 시스템을 갖추는 게 급선무지요"

유 회장은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산증인이다.

그는 1967년 국내 최초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인 ''홍길동'' 제작에 키(key) 애니메이터로 참여하면서 애니메이션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제작한 TV 애니메이션 ''떠돌이 까치''를 비롯 ''머털도사''''콩닥쿵 이야기주머니'' 등 다수의 작품을 제작했다.

이중 ''머털도사''는 TV 애니메이션 가운데 유일하게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유 회장이 당시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파는 등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애쓴 덕분이었다.

"현재 국내 애니메이션계는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벽돌부터 쌓고 있습니다.

노하우나 경험도 없이 너도나도 제작에 뛰어드는 풍토가 가장 큰 문제지요"

지난해 설립된 애니메이션 아카데미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도 힘쓰고 있는 그는 세계적인 작품을 지속적으로 제작해 국내 애니메이션 발전의 밑거름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02)586-9832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