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젊은 연기자들은 악역맡기를 꺼려한다.

드라마 PD들은 배역에 맞는 탤런트 캐스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투덜댄다.

얼마전 모 방송사의 드라마 CP는 "낙점해둔 연기자가 악역이라고 고사하는 바람에 드라마 전체 색깔이 바뀌게 됐다"는 사실을 털어놓기도했다.

이런 풍토에서 하지원(21)은 악역을 자처하고 나선 몇안되는 연기자다.

덕분(?)에 MBC 수목드라마 "비밀"에 출연중인 그는 요즘 평생 들을 욕을 한꺼번에 몰아서 먹고 있다.

바빠서 인터넷할 시간도 없다는 그에게 통신에 올라와있는 몇가지 사례를 들려줬다.

"오히려 다행이네요. 시청자들이 절 보고 "못된 계집애"라며 화를 낸다면 제 연기가 어느정도 성공하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어"

"비밀"은 이복자매 앞에 어느날 유명한 패션디자이너인 생모가 나타나자 언니가 친딸임에도 동생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벌어지는 자매의 엇갈린 운명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가난을 지긋지긋해하던 동생 지은 역의 하지원은 손에 움켜진 행복을 놓치지 않기위해 출생의 비밀을 숨기려드는 악역이다.

착하기만 한 "콩쥐표"언니 희정역은 김하늘. 왜 악역을 하고 싶었을까.

"전 해보고 싶은 드라마도 많고 배역 욕심도 많아요. 그런데 영화를 하다보니까 젊은 세대는 절 알아보는데 30대만 넘어가도 누군지 모르더라구요. 그래서 강렬한 이미지의 악역이 시청자들에게 제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에게는 똑순이 기질이 있다.

처음 출연했던 MBC 베스트극장의 연기가 시원찮다는 얘기에 3개월동안 집에 틀어박혀 스파르타식 연기공부를 했다.

"3개월간 아무도 만나지 않았어요. 아침에 일어나 산에 오르고 낮에는 비디오 본 후 감상문 쓰는 게 일과였어요. 제 연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후 그는 독해졌다.

출연한 영화 "동감"과 "가위"가 연거푸 흥행몰이에 성공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지난 5월에는 "진실게임"으로 대종상 신인상까지 거머쥐었다.

같은 빌라에 사는 이웃들은 그가 대종상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떳다,하지원,장하다 하지원"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붙이고 동네잔치까지 벌였단다.

그는 "비밀"을 시작한 후 새벽 1시가 지나 집에 들어가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잠은 대부분 이동중인 차안에서 때우기 일쑤다.

몸상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겨우 작품하나 하는 제가 쓰러지면 사람들이 웃는다"며 태연스레 답한다.

그는 "출연작은 많지 않지만 안성기 박근형 선배님들과 같은 작품을 해보니 정말 남자의 향기가 이런거구나 하고 느낄 정도로 배우는 게 많다"고 말했다.

"저도 안성기 선배님처럼 국민배우가 되볼까요"라며 웃는 모습에서 오랜만에 배우근성을 느낄 수 있었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