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와이드 샷"(Eyes Wide Shot.2일 개봉)만큼 개봉전 세계 영화계의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 또 있을까.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9년만에 작품을 만들고,할리우드 최고 커플인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 극중 부부로 캐스팅되고,하지만 그 내용은 배우와 스탭들이 개봉때까지 입을 다물겠다는 각서까지 썼을 정도로 철통같은 보안에 부쳐졌다.

당초 13주로 예정됐던 촬영일정이 15개월로 늘어나는 와중에 온갖 루머가 피어올랐다.

상당부분은 전대미문의 에로틱한 영화가 탄생할 것이라는 게 골자였다.

큐브릭 감독이 극비리에 치러진 1차 시사회후 나흘만에 세상을 뜨며 영화는 "미완"으로 남게 됐고 그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증폭됐다.

모자이크 처리를 둘러싼 우여곡절끝에 국내에 상영되는 "아이즈..."를 놓고 일단 "엄청나게 섹시한 무엇"을 기대했다면 분명 실망할 일이다.

영화는 성애영화가 아닌 인간의 굴절된 성적 욕망과 그를 투영하는 꿈에 대한 프로이드식 성찰이다.

벌거벗은 여인들이 줄줄이 등장하지만 철저히 물체화된 그들에게 번질거리는 성적욕망을 느끼긴 어렵다.

그나마 "충격적"이라고 알려진 난교장면조차 대극장의 D석쯤에서 맨눈으로 보는 연극처럼 건조하고 기억나지 않는 꿈처럼 희미하다.

영화는 독일 작가 아서 쉬니즐러의 소설 "꿈이야기(Traumnovelle.26년작)"를 토대로 했다.

9년동안 부러울 것 없이 살아온 상류층 부부가 키워왔던 은밀한 성적 일탈의 욕망과 환상에 빠져들고 그 가식이 벗겨지면서 진정한 각성을 얻고 화해한다는 내용.

하지만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관객이 마주할 것은 가슴 깊은곳의 욕망이다.

이성과 도덕적 위선의 무게에 압착된 질척한 욕망.

가슴속 밑바닥에서 꿈틀대고 발버둥치던 욕망은 그를 가둬놨던 방호벽에 구멍이 뚫리는 순간 꾸역꾸역 밀려나온다.

다른 남자와의 정사를 상상하는 부인이나 그로인해 분노를 불태우던 남편의 "가면"뒤에 숨겨진 것은 역시 욕망으로 얼룩진 또다른 얼굴이다.

감독은 영화를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통제하며 살아가는 인간에 관한 영화"라고 했고 그 메세지는 "질끈 감은 눈"이라는 타이틀에서부터 시종 몽환적인 영상속에 뚜렷하게 각인된다.

대저택의 혼음파티를 둘러싼 미스테리는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원동력이자 표면적 진실이 "가짜"(fake)일 수 있다는 주제와도 닿는다.

단조로운 피아노음은 나직한 톤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다간 귀청을 부숴뜨릴 듯한 기세로 정신을 각성시킨다.

상상했던대로 두사람은 실로 눈부신 커플이다.

톰 크루즈 특유의 남김없이 웃는 미소도 눈부시지만 니콜 키드만은 더욱 매혹적이다.

흰눈보다 새하얀 그의 나신이나 심장에 곧장 와 박히는 새파란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이 하얗게 뭉개질 정도다.

어쨌든 오래된 부부들이라면 반드시 보고 넘어가시길.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