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블루사이공의 여주인공으로 열연중인 강효성씨를 만난 건 지난 17일 공연이 엿새째에 접어든 날이었다.

다른 연극이나 뮤지컬 같으면 언제 어떤 "사고"가 터질지 안심할 수 없는 시기다.

호흡이 조금씩 들어맞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블루사이공은 달랐다.

12일 첫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은 "오늘 첫 공연 맞아"라며 스스로도 놀라워 했다고 한다.

강효성씨는 "작품성이 워낙 뛰어나 배우는 물론 작가 연출가 모두 재공연되기를 기다려왔다"며 "마음의 준비가 돼 있어서 그런지 첫 공연부터 한발 앞서 나간 것 같다"고 말한다.

그사이 기자의 시선은 강씨의 고혹적인 모습을 받쳐주는 긴 머리카락으로 옮겨 갔다.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가 찰랑 찰랑 바람에 흔들렸다.

"5년전 초연때 후엔역을 하기 위해 머리를 길렀는데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요. 언젠가는 다시 재공연 되리라 생각하고 머리를 자르지 않았던 거죠.여름나는 게 힘든 체질인데도 블루사이공을 위해 참고 또 참았어요"

강씨는 "5년전보다 연기가 더 원숙해졌다"는 관객들의 반응에 고무된 표정이다.

"초연때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대해 심층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두번째 하다보니 좀더 채워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레몬향기 같은 상큼하고 이국적인 음색,유연한 프레이징과 매혹적인 바이브레이션이 더욱 돋보이게 됐다.

그가 입고 나오는 3가지 의상도 눈길을 끈다.

바(bar) 접대부로 나오는 신(scene)에선 속살과 팬티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검은색 망사 원피스를 입는다.

뇌쇄적이라고 할까.

그의 각선미와 섹시함이 기대하지 않았던 극의 재미를 하나 더 보탠다.

김상사와 사랑을 나눌때는 베트남 전통의상인 흰색 아오자이,전쟁터에서는 카키색 군복으로 갈아입는다.

하나같이 자기 옷처럼 잘 어울렸다.

20년이란 경력이 어떤 의상이나 캐릭터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역사와 함께 해온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씨는 80년대초 선배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단다.

"너희들 세대는 우리나라 뮤지컬의 뿌리 역할을 할거다. 꽃피는 시기는 더 있어야 올 터이고..."

그래서 뿌리가 돼보자고 속으로 다짐했고 세월은 그렇게 흘러 20년의 강을 이뤘다.

"요즘 TV매체로 활동영역을 넓히는 후배들을 보면서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경주 김인수씨도 나랑 같은 세대인데 이제 우리도 꽃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어요"

강씨가 출연한 작품은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포기와 베스" "사운드 오브 뮤직" "한여름밤의 꿈" "지붕위의 바이올린"등 수십여편에 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블루 사이공"이라고 강씨는 힘주어 말한다.

"연기를 하면서 감동을 받고 그것이 다시 연기로 우러났던 작품은 블루 사이공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을 다룬 수작이어서 더욱 열정이 샘솟는 듯 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혼자서 얘기를 끌고 가는 모노뮤지컬을 해보고 싶다고 바램을 전한다.

무대를 혼자 장악해야 하는 어려운 분야인 만큼 도전의식이 생긴다며 활짝 웃는다.

동숭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인 블루 사이공은 오는 31일까지 공연된다.

장규호 기자 seinit@ 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