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극본 이환경, 연출 김동선)이 방송 이후 30% 이상의 시청률을 꾸준히 지키며 주말 안방극장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사실감 넘치는 전투장면과 시원스러운 들판을 무대로 한 야외촬영으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태조 왕건''은 사극이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보기좋게 일축하고 있다.

촬영장을 찾은 초등학생들도 "허준이 끝난 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출연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촬영과 무더위로 요즘 고역을 치르고 있다.

갑옷까지 걸치고 야외촬영을 하는 날이면 사우나가 따로 없다.

왕건 역의 최수종은 지난주말 탈수증상으로 이틀간 병원신세까지 졌다.

지난 14일 KBS의 제4스튜디오를 들어서는 순간 땀에 절은 군복에서 풍기는 시금털털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스튜디오 촬영이 있는 날이라 복도부터 병졸들로 붐볐다.

대사가 가장 많은 궁예 역의 김영철은 내내 대본을 끼고 돌아다닌다.

촬영에 바로 들어가기 전까지 대본을 외우다 감독의 ''큐''사인이 떨어지면 살짝 등뒤나 발밑에 밀어놓는다.

그는 "대사가 많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한쪽 눈을 안대로 가려 머리가 지끈거리는데다 외워야 할 대사까지 많아 죽을 맛이란다.

왕건 역의 최수종은 대사 연습도 극중 성격과 닮은 꼴이다.

혼자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린다.

궁예보다 대사부담은 적지만 ''NG''소리에 입맛을 쩝쩝 다신다.

야외촬영이 얼마나 고되었던지 "스튜디오 녹화때는 에어컨이 있어 살 것 같다"며 좋아한다.

''태조 왕건''출연진은 요즘 회사원이 된 기분이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스튜디오로 ''출근'',수요일부터는 문경·제천의 야외세트장에서 살다시피 한다.

피서와는 담을 쌓은 지 오래다.

연화 역의 김혜리는 "올 여름 유일한 피서는 문경 세트장 근처 계곡에 발을 담가본 게 전부"라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다.

이날도 녹화는 오후10시가 다 되어 끝났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