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배치로 따지자면 맨 왼쪽 줄 앞에서 네번째 자리쯤에 앉는 학생이랄까요. 조용해서 눈에 잘 안띄는 그런 애들 있잖아요"

국내최초의 액션 릴레이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15일 개봉)의 류승완 감독(27)은 스스로를 "있는 듯 없는 듯"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그가 대중앞에 내놓은 첫 작품은 충무로에 일대 충격을 안기며 그의 존재를 선명히 부각시켰다.

"죽거나..."는 4편의 16mm단편으로 이뤄진 연작 형식.

고등학생들이 피터지게 싸우는 "패싸움"에서 출발해 살인의 죄책감을 다룬 "악몽",형사와 조폭을 대비시킨 "현대인",조직폭력배들의 혈투를 그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이어진다.

액션,호러,세미다큐,갱스터.

각각 다른 장르의 에피소드들은 독자적인 기승전결을 갖추며 나아가다가 마지막 4편에서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단편영화의 압축미를 유지하면서 합일을 이뤄내는 완결구조는 호흡 한번 끊기지 않는 매끄러움을 과시한다.

전례없이 독특한 영화에 들어간 제작비는 6천5백만원.

웬만한 연극 한편을 만드는데도 1억원이 홀랑 넘어가는 세상에서 "형편없이" 저렴한 비용이다.

더욱이 대중과 거리지기 쉬운 "단편"을 혀를 내두를만한 작품성과 재미로 무장시켜 요리해낸 솜씨는 감탄스럽다.

뿐인가.

각본에 연기까지 맡은 감독이 아직도 뽀얗고 해맑은 얼굴의 스물일곱살 청년,그것도 제도권 교육을 등진채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뭉쳤다는 사실에는 누구도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작품구상은 영화사에서 막일을 하던 93년부터 했어요. 그러다 97년에 "나쁜영화"의 자투리 필름을 얻어서 "패싸움"을 촬영했고 지난 겨울에 마무리를 했지요. 제일 좋아하는 장르들을 다 풀고 싶었어요. 주제요?굳이 말한다면 인생은 내맘대로 되지 않는다쯤?"

"종합선물세트"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말답게 영화는 다양한 재미를 변주한다.

통쾌한 싸움질로 박진감을 선사하다가는 등골서늘한 공포로 관객을 몰아친다.

공포는 포복절도할 웃음으로 흐르다 결국 비극적인 처참함으로 눈시울을 적신다.

영화를 관통하는 핏빛 처절함은 눈을 돌리고 싶을만큼 아프다.

"갈때까지 가지 않으면 미련이 남을 것 같았거든요. 절망의 끝까지 간 후에야 밝고 아름다운 것에도 눈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구요. 싸우면 안된다는 메시지(?)도 담고 싶었지요"

성룡을 제일 좋아한다는 그는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최고의 미덕으로 꼽았다.

"웃었으면 할때 웃고 슬퍼했으면 할때 슬퍼하는 소통이 중요한 것 같아요. 거창한 감동보다는 보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할 수 있고 감정의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충무로의 "신성"으로 떠오른 이 청년은 "갑작스런 조명이 두렵고 당혹스럽다"며 남김없이 웃었다.

글= 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