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긴 남자배우를 ''섭섭지 않게'' 만나 봤지만 주진모(26)는 달랐다.

정교한 이목구비와 흐르는듯 미끈한 몸의 선, 빈틈없이 발달한 근육과 섬세한 목선.

시선을 거두기 아까울 정도다.

하지만 조각같다 해서 거북하거나 남성답다 해서 느끼하지 않은 매력이 그를 유독 돋보이게 한다.

귀엽고 예쁘장한, 사실 좀 징그러운 남자들이 판치는 요즈음엔 더더욱 그렇다.

24일 개봉되는 영화 "실제상황"(감독.각본 김기덕)에서 주진모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관객을 찾는다.

섬뜩한 살기로 충천한 본능의 화신 "나"의 역이다.

제작진이 "충동에 관한 보고서"라고 밝혔듯 영화는 이성 혹은 두려움에 억눌렸던 충동이 풀려났을 때 드러나는 인간의 광포한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대학로에서 초상화를 그리며 사는 "나"에게 어느날 이상한 소녀가 접근한다.

소녀를 뒤쫓아간 곳은 "또다른 나"라는 연극 포스터가 붙은 허름한 소극장.

텅빈 무대에서 "나"를 기다리던 "또다른 나"는 "나"를 모욕하며 가슴 속에 쌓아뒀던 분노와 적대감을 하나씩 헤집어 낸다.

자신을 등쳐먹는 깡패들,태연히 바람을 피우는 여자친구,자신을 강간범으로 몰아 모멸적인 고문을 가했던 형사,군시절 자신을 교묘히 괴롭혔던 부하...

분노로 잉태된 "또다른 나"는 세상으로 달려나가 잔인한 복수극을 벌인다.

살기등등한 주진모의 눈빛은 관객을 강하게 사로잡는다.

"댄스댄스"나 "해피엔드"에서 만날 수 없었던 강렬한 연기다.

"감독님이 만든 영화는 다 봤어요. 같이 일을 하고 싶었는데 캐스팅 제의가 왔지요. 대본을 보고선 바로 하겠다고 했구요. 살다보면 그럴때 있잖아요. 살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방을 한대 세게 치고 싶은 충동이 솟구칠 때.군대에서 괴롭힘을 심하게 당했던 기억도 살아나면서 해야겠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단 한차례 NG를 빼곤 처음부터 끝까지 단번에 촬영을 끝낸 "실제상황"은 촬영시간 2백분이라는 신기록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특별한 경험이었죠.그때 어떻게 연기를 했는지 전혀 생각이 안나요. 촬영마치고는 그대로 뻗어 이틀을 못일어났을 정도니까요"

분신을 내세워 잠재된 폭력성을 조명했던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과 맥이 닿는 이번 영화는 "섬"같은 김기덕 감독의 전작에 비하면 엽기성이나 불편함이 덜한 편이다.

하지만 "상품성"이라는 잣대로 보면 선뜻 장밋빛 전망을 내놓기 어렵다.

감독도 "힘들게 태어난 영화인 만큼 낯설더라도 애정을 가져주기 바란다"면서 "한창 뜨는 진모가 가라앉지나 않을까 염려가 된다"고 했을 정도.

"걱정하시는 분들도 종종 있어요. 돈안되는 쪽으로 가려 든다는 거지요. 하지만 돈보다야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을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요?"

담배를 피워문 그는 말을 이었다.

"영화는 시나리오를 읽고 역할에 충분히 빠져들 시간이 주어진다는게 마음에 들어요. 순발력이나 테크닉이 중요한 TV보다 배우가 생각하고 연구하고 느낌을 표현할 부분이 많은 영화쪽에 정이 갑니다.
언젠간 한 인간의 굴곡많은 일대기를 그린 작품을 해보고 싶습니다.
사람냄새 물씬나는 작품이요"

공무원이 꿈이었다는 이 남자는 작품마다 성장을 거듭하는 썩 괜찮은 배우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글=김혜수 기자 dears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