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개봉된 영화 "반칙왕"은 전국적으로 2백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놀라운 성공의 배경에는 송강호(33)라는 배우가 있다.

"넘버 3"에서 불사파 두목 조필로 나와 특유의 더듬거리는 말투로 주목을 끌기 시작한 그는 "조용한 가족""반칙왕"등 그간 출연했던 영화에서 줄곧 괴팍하고 코믹한 연기를 선보였다.

"쉬리"에서 다른 모습을 시도했지만 반응은 "송강호는 연기폭이 좁다"는 인식이 주를 이뤘다.

그가 "쉬리"의 정보요원에 이어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한다.

오는 9월9일 개봉할 영화 "공동경비구역JSA"(감독 박찬욱)에서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동시에 지닌 북한군 중사 오경필 역을 맡은 것.

"새로운 시각으로 분단현실에 접근한 영화입니다. 고정된 "북한군"이미지와 다른 좀더 유연하고 속살 무른,그런 인간을 보여줄 겁니다"

올 2월 촬영을 시작한 이 영화는 직경 8백m 지역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일어난 북한 초소병 살해사건의 진실을 밝혀가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물이다.

기존 남북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긴다.

우선 냉전논리에 입각한 편파적인 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보지 않는다.

분단의 상징적 공간인 판문점을 무대로 남북한 젊은 세대 사이에 흐르는 뜨거운 휴머니즘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그가 맡은 오경필 중사는 강인하고 거친 성격의 소유자지만 한편으로 따뜻한 인정과 의리를 지니고 있다.

사건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핵심 인물이면서도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감추고 있어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만든다.

"말투나 행동에 특히 어려운 부분이 많았어요. 정성산 작가가 개인교습을 해줘 큰 도움이 됐습니다. 촬영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은 정말 북한군이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 배역을 위해 송강호는 지난 95년 귀순한 정성산 작가로부터 직접 북한 사투리를 배웠다.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기도 하는 등 자연스러운 북한군 연기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 5일 경기도 양수리 서울종합촬영소 판문점 오픈세트 공개식에서 만난 그는 검게 그을린 얼굴에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이었다.

해쓱해진 모습이 그간의 마음고생을 보여주는 듯 했다.

"보름 이상 밤을 새면서 촬영한 탓에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워낙 밤 장면이 많아 "올빼미"가 다 된 느낌이에요. 추위와 싸우면서 갖은 고생을 다한 만큼 좋은 영화가 될 것 같습니다"

송강호는 중학교 2학년때부터 배우의 꿈을 품었다.

대학 연극영화과에 두 번이나 떨어지고 군대를 다녀온 뒤 고향인 부산을 떠나 무작정 상경했다.

동경해 마지않던 극단 연우무대에 들어가 막일부터 시작했다.

91년 연극 "동승"으로 처음 무대를 밟은 후 "지젤""비언소"를 비롯해 12편의 연극에 출연했다.

96년 "비언소"를 보러 온 이창동 감독의 눈에 띄어 "초록물고기"에 캐스팅돼 본격적으로 영화와 인연을 맺었다.

연기생활에서 그의 좌우명은 "나태와 타협하지 말라"이다.

능력이 안되면 어쩔 수 없지만 게을러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건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욕심은 별로 없지만 연기에 대한 집요함만은 누구보다 강하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