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역시 인간이었다.

코앞까지 끼쳐온 죽음의 냄새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었던,들고 있던 총을 내던지고 목숨을 부지하고 싶었던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80년 5월 마지막 순간까지 광주를 지키던 이들은 그러나 자연스런 욕망들을 모두 거둔채 목련처럼 후두둑 스러져갔다.

18~27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 오르는 "오월의 신부"(극단 연우무대,황지우 작.김광림 연출)은 5.18 민주항쟁의 중심에 서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광주이야기를 기둥으로 하고 있지만 사실을 나열하기보다는 절해고도에 갖힌 사람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따라나간다.

대학생 김현식과 오민정은 학생투사로 이름을 날리던 친구 강혁의 이름을 빌려 광주항쟁을 주도한다.

뒤늦게 광주로 돌아온 혁에게 현식은 민정을 맡겨 광주를 빠져나가게 한다.

하지만 민정은 현식에게 다시 돌아오고 도청에서 혼배성사를 치른다.

하늘 가득 꽃가루가 날리는 아름다운 순간을 뒤로 하고 둘과 모든이들은 죽음을 맞는다.

못다한 사랑에 대한 주인공들의 미련이나 "후세에 남을 이름"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도청에서 나간후 느끼는 안도감에 죄의식을 느끼는 장신부의 모습은 "투사"들의 인간적인 갈등을 선명히 드러낸다.

도청에서 살아남은 후 미쳐버린 광인의 입을 빌어 드러내는 진실은 밝은 하늘 아래서 진실을 감히 말할 수 없던 현실과 함께 진정한 "성인"의 의미를 되살핀다.

"잘가라 내친구 잘가라 내사랑/그대들 떠나는 날,마침내 내 청춘의 물집도 터지고/스무살 푸른어깨가 받쳤던 짐을 이제야 다 부린듯.../내가 서 있는쪽,자꾸만 흐려지는 풍경 뒤돌아보지 말고/잘가라 내사랑"

시인의 손에서 피어난 시처럼 아름다운 대사들은 작품에 "시극"이란 타이틀을 붙이기도 했다.

연출을 맡은 김광림 연극원 원장은 "광주는 소재입니다.

아픈 상처만을 들추어내거나 영웅담에 치우치지 않고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담고자 했지요.

궁극적으로는 불멸을 추구하는 삶은 아름답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어요.

관객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도 던지고 싶었고요"라고 말했다.

17일 오후 8시에는 시연회가 열린다.

(02)762-0010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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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황지우시인 ]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라고 노래하던 황지우 시인(48)은 첫 희곡의 주제로 광주이야기를 택했다.

"20주년이잖아요.

우리세대라면 누구나 광주에 얼마쯤 부채감을 가지고 있겠지요.

광주와 인연도 특별하고.작가로서 내가 몸담았던 20세기 역사의 비극적인 단층을 꼭 드러내고 지나가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광주라는 소재 자체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사람들을 수도없이 만났다.

절망,원망,다음엔 오기.

그래서일까.

가슴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싯구들 틈에서 "눈깔"같은 핏빛 어휘가 귀를 찌른다.

"위악적으로 험한 말도 끼워넣었어요.

어깃장을 놓는달까요.

자료를 뒤적이다 보니 계엄군이 시민의 눈을 파내는 장면이 유난히 와닿았구요"

소포클레스나 세익스피어를 사랑한다는 시인은 "문학으로서의 희곡"을 계속 쓰고 싶다고 했다.

1회용 공연대본이 아닌 자기완결성을 갖춘 텍스트로서의 희곡.

그는 이어 한국 현대사를 차례로 희곡화하는 꿈을 갖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월의 신부"는 그 프롤로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