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사랑과 이별로 점철된 센강 다리위에서.

절망감으로 강물에 몸을 던지려는 여인.

자살하러 다리위에 온 한 남자가 그녀의 자살을 만류한다.

그들은 운명적이라고 믿는 서로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삶의 즐거움과 서로에 대한 사랑을 조금씩 깨달으면서.

프랑스 영화인 "걸 온 더 브리지" (the Girl on the Bridge) 는 기존의 많은 프랑스영화처럼 비현실적인 줄거리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재미없는 스토리로 일관된 영화는 전혀 아니다.

흑백화면에 펼쳐지는 클래식한 영상미,간결한 대사,칼던지기에서의 긴장과 두려움,인간에 대한 연민...

"아,영화같은 영화구나"하는 느낌이 저절로 와닿는 수작이다.

거듭된 사랑의 실패로 절망에 빠진 아델(바네사 파라디)은 센강 다리 위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가보(대니얼 오테이유)라는 남자가 자살을 방해한다.

서커스에서 칼던지기 쇼를 하며 평생을 살아온 그는 아델에게 자신의 조수로 일할 것을 제안한다.

조수 일이란 칼던지기 쇼에서 가보가 던지는 칼의 표적이 되는 일종의 도박이다.

인생을 포기한 아델은 위험하기 이를데 없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절망만이 자신의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고 믿고 있는 아델은 가보와 함께 일하는 동안 신비로운 행운이 찾아오고 있음을 감지한다.

가보와 아델은 훌륭한 파트너가 돼 가는 곳마다 인기와 찬사를 독차지한다.

그러나 아델은 어리석게도 호화유람선상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리스의 낯선 사내와 사랑에 빠져 그 곁을 떠난다.

졸지에 아델을 잃은 가보는 이스탄불에서 아델을 그리며 거지에 가까운 비참한 생활에 처한다.

아테네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그리스 남자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 아델은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고 행운을 가져다 준 남자가 가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영화는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두 "아웃사이더"의 운명적인 만남을 로맨틱하게 비화했다.

자신의 인생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대합실"에 비유한 아델,신념과 행운을 믿는 가보.

두 남녀 주인공의 새 삶을 위한 노력은 그리 참신한 내용은 아니다.

이 영화의 힘은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칼잡이를 등장시켜 흑백으로 처리한 "선택"에 있다.

이 영화가 컬러였다면 화려한 서커스 장면 등에서 초점이 흐려질 소지가 있다.

흑백영화야말로 관객들이 "영화보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번뜩이는 재능이 돋보인다.

"칼던지기 쇼"라는 소재는 애틋함과 아찔함,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을 함께 느끼게 해준다.

1cm 만 빗나가도 죽음에 이르는 칼을 수없이 맞아야 하는 아델의 애틋한 심정이 흑백화면속에 스며녹아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두운 면을 갖고 있는 아델역의 바네사 파라디는 관능미와 연기력을 함께 갖췄다.

지난 90년 "하얀면사포"로 세자르영화제에서 "촉망받는 여배우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가보역 대니얼 오테이유는 "마농의 샘""제8요일" 등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개성파 배우다.

브렌다 리의 "I"m Sorry", 마리안느 페이스풀의 "Who will take my dreams away?" 등 애절한 감동을 주는 배경음악들이 모나코 산레모 아테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잔잔하게 펼쳐진다.

이 영화는 올해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이다.

8일 개봉.

이성구 기자 sklee@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