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회사에서 36년을 일했어.사람은 먹다버리는 과일조각이 아니라구..."

세일즈맨 윌리 로먼의 절규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가슴을 뒤흔든다.

1949년 미국 극작가 아서 밀러가 발표한 걸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주인공 윌리의 비극을 통해 자본주의의 화려한 얼굴뒤에 감춰진 비인간적인 생존논리와 그 병폐를 예리하게 들추어냈다.

작가에게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안겨준 이 작품은 1940년대말 미국사회의 자화상이었다.

대공황과 2차대전을 거친 미국은 자본주의라는 기관차에 이끌려 무섭게 치닫고 있었다.

대경쟁의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의 존재가치는 "생산성"에 의해 매겨졌고 생산성을 잃어버린 인간은 가차없이 용도폐기당했다.

자본주의의 비정한 생리는 수많은 소시민들을 소외시켰고 낙오자로 전락시켰다.

서울시극단이 새천년 봄 정기공연으로 "세일즈맨의 죽음"(12~30일,세종문화회관 소극장)을 택했다.

21세기의 초입에서 지난 세기의 걸작을 훑어보겠다는 의도다.

유명작품인만큼 국내에서도 여러번 공연돼 새로운 맛은 없다.

김의경 예술감독은 "이 작품은 국가나 세대를 불문한 보편적 정서를 담고 있다"며 "이순재 윤소정 김갑수등 중견배우들의 선굵은 연기로 소시민의 보편적인 자화상을 그려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외판원으로 한평생을 살아온 윌리(이순재).

이제 나이가 들어 지방 출장 다니기가 힘에 부치지만 아내(윤소정)와 서른살이넘어서도 부모에게 기대어사는 두아들을 부양하느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을 나선다.

젊은이들에게 치어 실적이 형편없지만 "왕년"의 추억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고심끝에 윌리는 친구손자인 회사 사장에게 본사근무를 간청하지만 사장은 쓸모없어진 윌리를 냉정하게 내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윌리는 결국 가족에게 보험금이라도 타주기위해 목숨을 끊는다.

30여년만에 주택 할부금 붓기를 끝낸 아내는 그 집에 더이상 살 사람이 없음에 눈물흘린다.

고독한 가장역을 맡은 이순재와 큰아들 비프역의 김갑수는 23년전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개관기념 공연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나란히 윌리와 식당보이로 출연했던 인연도 있다.

02-399-1647~8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