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자 대표 약력 >

<>43년 서울출생
<>61년 숙명여고 졸업
<>70년 ''현대화랑'' 개관
<>73년 한국최초 미술전문지 ''畵廊''발간
<>87년 ''갤러리현대''로 개명
<>89~90 한국화랑협회 회장역임
<>98~현재 홍익대 미술대학원 현대미술 최고위과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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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화가 박수근부터 이중섭 김환기 백남준까지 대가들의 작품이 저희 화랑 전시회를 통해 빛을 보게된 게 무엇보다 큰 보람입니다.

근현대 유명작가들을 가까이서 접할수 있었던 점도 큰 행운이고요"

4일로 개업 30주년을 맞는 현대화랑의 박명자(57)대표.

그는 70년 상업화랑을 국내에 처음 개업,경제적으로 궁핍한 화가들의 창작의욕을 돋우며 국내화단을 이끌어온 한국현대미술사의 산 증인이다.

그는 중진및 대가들의 그림을 제대로 평가받는 기회의 장을 마련한 것을 큰 보람으로 여긴다고 강조했다.

그가 화랑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61년 여고 졸업후 첫직장인 반도호텔 1층 반도화랑에 들어가면서부터.

이대원선생(전예술원회장)이 운영하던 이곳에서 많은 대가들과 사겼고 그림을 보는 안목도 키웠다.

"당시 반도화랑은 그림을 파는 곳이라기보다 화가들의 모임장소였지요.

박수근 유영국 장욱진등 유명화가들이 많이 들렀어요.

그때 화가들과 맺은 인연이 화랑운영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가 화상으로서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림을 보는 탁월한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운보 김기창선생이 하루는 저보고 작품을 보는 눈이 발달한 사람이라며 화랑을 해보라고 권유하시더군요.

우리나라에도 상업화랑이 발달해야 미술계가 한단계 더 발전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70년4월4일 인사동에 현대화랑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게된거죠" 지금까지 그가 기획한 전람회는 작은 전시회를 포함해 3백회가 넘는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수만도 1만점을 웃돈다.

박수근 이중섭 이상범 변관식 김기창 장우성 도상봉 변종하 박고석 유영국 이대원 김흥수 등 이곳을 거쳐간 유명화가들은 셀수없을 정도다.

이 가운데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전시회로 그는 72년의 이중섭전을 꼽는다.

당시 인사동 네거리에 관람객이 수백m나 줄지어 늘어서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화가들과 함께 한 세월에 보람도 느끼지만 가끔 화가들의 괜한 자존심때문에 당혹스러울때도 있다고 술회한다.

"좀 잘나가는 작가들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3백만원짜리 그림도 3천만원에 부를때가 있습니다.

이럴땐 참 황당합니다"

그는 세월의 흐름을 그림값에서 느낀다.

"60년대 3천원하던 박수근 그림값이 지금은 십만배가 뛴 3억원에 거래될 만큼 많이 변해있습니다.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요"

컬렉터들의 선호가 동양화에서 서양화로 넘어간 것 역시 큰 변화중 하나다.

"70년말 이전에는 이상범의 그림값을 박수근이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역전이돼 박수근 그림값이 3~4배는 더 비쌀겁니다"

그의 좌우명은 "신용".

그림은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예술이기때문에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으면 취급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화상으로서의 생명 또한 끝나게 된다.

그래서 "신용"을 항상 마음속깊이 새기며 살고 있다.

물론 신용을 지키려면 그림을 보는 안목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컬렉터들이 그림을 믿고 살수 있기때문이다.

결국 그의 오늘은 "신용과 안목"이 만들었다고 할수 있다.

< 윤기설 기자 upyks@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