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작은 거인"

5척단신에 50kg 남짓한 체구지만 날카로운 눈빛과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거인의 에너지가 넘친다.

바로 한국 연극계의 거목인 극작가겸 연출가 오태석(60.서울예대 극작가 교수)이다.

그는 2시간동안 연습시간 중 한번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관객석 왼쪽 뒤편에서 호령을 내리다간 어느새 오른쪽 뒤로,가운데로,무대 아래로 줄달음질치며 무대를 살핀다.

모든 각도에서 "그림"을 살피고 대사가 구석까지 들리는지를 체크하기 위한 것.

국립극장 50주년 기념 작품으로 선정된 자신의 대표작 "태"(4월1~9일 국립극장 대극장)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손질에 여념이 없다.

"태"는 세조의 왕위찬탈을 소재로 권력의 칼날 아래서도 끊어지지 않는 생명의 힘을 조명한 작품.

1970년대 군사독재 치하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국민학교 5학년때 사육신 이야기를 들었어.삼족을 멸하는 게 뭘까 하는데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야.외삼촌이 잘못하면 니들까지 잡아다 죽이는 거라고.순간 오싹해지면서 처음으로 죽음이 무섭다고 느꼈지"

한참 지나 1974년 소급 비상계엄령이 내려졌고 죄없는 대학생들이 많이 죽는 걸 봤다.

그때 다시 죽음의 오싹함을 느꼈다.

사육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희들은 비록 스러지지만 뒤이어 새생명이 싹튼다고 위로하고 싶었지.박정희씨한테는 산고끝에 태어난 모든 생명이 위대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2000년 새로 태어난 "태"는 생명으로 인한 용서와 화해에 집중한다.

화난다고 어미의 목을 조르고,아비가 밉다고 죄없는 여학생을 찌르고,복제 송아지가 "설치는" 세상에 생명의 존귀함을 그는 소리치고 싶다.

올해 환갑.

대학 2학년(연세대 철학과)때 무대의 막을 올리고 내리는 일을 하는 막잡이로 출발한 연극인생이 벌써 39년째이다.

"아직도 철이 안들었어.나이든 사람답게 품위를 갖춰야 하는데 급하면 욕부터 튀어나오니 아직 멀었지"

그는 "거목"이란 호칭에 쑥쓰러워 하면서 자신의 꿈을 밝힌다.

"이름값을 해야 하는데.우리극의 독특한 느낌을 십이분 살려서 세계언어로 전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어.그전에 방언도 텍스트로 챙겨놓아야 하고.우선 이남 5도를 대상으로 방언연극제를 열 작정이야.나라에서 많이 도와줘야 할텐데"

그는 잠시 말을 멈춘채 다른 곳을 바라본후 다시 말을 꺼낸다.

"버나드 쇼가 묘비명을 이렇게 썼어."어영부영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꼭 그런 기분이야.할일이 너무 많은데 시간이 아쉬워.할일이 많은데"

2274-1172~3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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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세조는 단종복위를 꾀하다 발각된 사육신과 그 삼족을 멸한다.

사육신중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며느리는 뱃속의 아기를 살리기 위해 시조부를 세조앞에서 살해한 후 아기를 낳게해달라 간한다.

세조는 아기가 딸이면 살려주고 아들이면 죽이기로 한다.

태어난 아기는 아들.

며느리는 종의 자식과 자신의 아기를 바꿔치기해 가문의 대를 잇는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세조는 권력으로도 원초적 생명의 힘을 이기지 못함을 깨닫고 아이를 살려주라는 명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