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글서글한 눈매,시원스런 이목구비.

김혜리(30)는 전형적인 도시풍의 얼굴이다.

아무리 봐도 한복과 쪽찐 머리가 썩 어울릴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는 순종적인 조선의 여인과 표독스런 왕비역을 천연스럽게 연기한다.

그런 모습에 가끔은 자신도 깜짝깜짝 놀란다.

KBS가 내달 1일 첫방송하는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강비(연화)역에 캐스팅된 김혜리.

그가 이 사극에서 보여줄 역은 지아비를 하늘처럼 받드는 순종형의 조선여인이 아니다.

질끈 동여맨 긴머리를 휘날리며 마상에서 평원을 달리고 남자들과 나란히 부족회의에 참석하는 당찬 여인의 모습이다.

"저에게는 네번째 사극이지만 아마 조선시대를 다룬 사극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될거예요. 후삼국에서 고려로 넘어가는 시기에 궁예와 왕건의 권력쟁탈 속에서 스러지는 비운의 여인역이에요"

김혜리는 "왕건"의 시놉시스를 읽으면서 강비가 자신과 닮은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강인하고 활달해보이지만 깨지기 쉬운 심성을 지닌 여인,연약한 내면을 들키지 않기위해 일부러 강해지려는 모습에 연민이 느껴졌다.

그런 강비의 비극적인 사랑이 가슴아팠다.

"강비는 왕건(최수종)과 어려서 정혼한 사이였지만 궁예(김영철)에게 억지로 시집을 가게 돼요. 궁예의 세력이 날로 커지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딸을 상납한 셈이죠. 결국 권력욕에 사로잡힌 남편을 등지고 아들을 왕으로 앉히려다 계획이 발각돼 사약을 받고 죽게됩니다"

사극은 요즘 젊은 연기자들이 기피하는 장르지만 그에게는 연기의 밑거름이다.

자연스레 사극예찬론으로 이어진다.

"CF나 이미지를 고려한다면 사극이 결코 연기자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죠. 하지만 사극은 발성부터가 일반 드라마와는 달라요.
발성을 위해 복식호흡을 배울 정도로 노력을 많이 해야 됩니다.
어떤 감독님은 사극이 연기의 기본이라고도 해요"

사극에 자주 출연하는걸로 봐서는 역사를 좋아했을 것 같다는 질문에 "역사수업을 제일 싫어해 수업시간에 맨날 잠만 잤다"며 웃는다.

오히려 사극에 출연하면서 역사공부를 새롭게 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에겐 역사수업이 참 지루한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사극을 하다 보니 역사책을 자꾸 뒤적이게 되더라구요. 서점에 가도 역사관련 책이 맨 먼저 눈에 들어올 정도예요"

이제 조선사를 마쳤으니 왕건에서는 후삼국과 고려시대 역사공부를 해 볼 참이란다.

그는 요즘 촬영이 없는 날이면 꼬박꼬박 승마장을 찾는다.

처음에는 말타는 장면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배워두면 좋겠다 싶어 시작한 게 이제 취미가 됐다.

"운동을 좋아해서 한번 시작하면 남들보다 잘할때까지 하게돼요.
게다가 말등에 몸을 싣고 내달리다 보면 진짜 강비가 된 기분이에요"

그는 여름에는 수상스키장에서 살다시피하는 스포츠광이다.

새까맣게 탄 얼굴을 본 연출가들이 제발 얼굴좀 그만 태우라고 성화를 할 정도다.

골프도 주니어상비군을 지낼 만큼의 수준급.

한때는 80타 초반까지 쳤지만 10년만에 클럽을 다시 들었더니 90타대에 뚝 떨어져있어 다시 연습을 시작했다.

시집가 애낳고 사는 친구들을 보면 결혼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하지만 그도 잠시,단번에 푹빠지는 불같은 사랑을 하고 싶은 그 앞에 아직까지 마음을 사로잡는 남자가 나타나지 않고있다.

"불같은 사랑이라니 아직 소녀취향이죠.이젠 결혼에 대해서는 거의 무감각해졌어요. 부모님도 "올해는 좋은 소식 있어야지" 정도로 지나칠 뿐 재촉하지도 않아요"

연기데뷔 10년째.

그는 "이제 연기의 맛을 조금 알것도 같은데 그럴수록 연기는 어렵고 두렵다"고 털어놓는다.

"아무것도 모를 때는 겁없이 영화도 찍고 이것저것 가리지않고 덤볐었는데 이젠 겁이나요. 특히 예전에 찍은 영화를 보고있으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려요"

그는 새 대하드라마가 자신의 청년기를 마감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이제 틀을 깨는 연기를 보여주고싶다"고 말한다.

그의 바람이 새 드라마에 얼마나 투영될지 기대된다.

글=김형호 기자 chsan@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