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

당신들이 꾸는 꿈은 아름다운가"

무대위에 되살아난 "5.18 광주"의 절규는 그날의 비극을 이기적인 망각속에 묻어두었던 이들에게 날선 비수처럼 와서 꽂혔다.

지난 10~12일 국립중앙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광주 민주항쟁 20주년 기념극 "봄날"(임철우 원작.김아라 연출)은 광주의 아픔을 슬프지만 아름답게 형상화한 역작이었다.

눈시울을 적시는 웅장한 진혼곡에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극은 공수부대원으로 광주에 투입됐던 나레이터(김갑수)의 회상을 통해 5월16일 횃불시위로부터 27일 도청함락까지 열흘간의 항쟁일지를 긴박하게 펼쳐보였다.

시민 학생 시민군 계엄군...

배우들이 전하는 "허구적 진실"은 무대뒤 스크린에 영사되는 당시 필름이나 신문자료가 보여주는 "절대적 진실"과 어울려 입체적인 리얼리티를 구현해냈다.

가장 돋보인 미덕은 절제와 균형이었다.

자칫 선동적이거나 과장된 표현으로 치우치기 쉬운 주제를 군더더기없이 차분하게 끌고나갔다.

스톱모션이나 슬로우 모션을 활용한 그림같은 연출은 과격으로 내달리는 감정을 걸러냈다.

피아노 선율과 북소리로 슬픔이나 공포를 증폭시키거나 피한방울 튀기지 않고도 관객의 머릿속에 피비린내나는 도살의 현장을 각인시키는 솜씨도 발군이었다.

원로배우부터 신인배우까지 60여명의 출연자들은 튀지 않으면서도 인상깊은 연기를 펼쳤다.

무대장치를 활용한 기교도 빛났다.

경사를 이용한 언덕형 무대는 원근감과 공간감을 극대화해 장대한 스케일을 살려주었다.

무대위 장면과 절묘하게 이어지는 영상도 공간을 놀라울만큼 확장시켰다.

특히 운수업자 시위 장면에서 무대뒤 막을 걷고 라이트를 비춰 "도도한 빛의 물결"을 만들어낸 것은 탄성을 자아냈다.

다만 대사도중 마이크가 군데 군데 끊어지거나 마이크 울림이 귀를 불편하게 한 것은 옥의 티였다.

간혹 합창에 묻혀 대사가 잘 들리지 않았던 점도 아쉬웠다.

봄날은 오는 5월18~20일 광주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다시 공연되며 이후 전국공연에 나선다.

(02)765-5476

< 김혜수 기자 dearsoo@ked.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