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뷰티"라면 얼른 생각나는 낱말이 "아메리칸 드림"이다.

맨손으로 야망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의 땅을 연상시키는 말과 유사한 타이틀이다 보니 화면속에 어떤 미국의 아름다움이 펼쳐지려나 싶은 궁금증이 생긴다.

더구나 이 영화는 곧 발표될 아카데미 작품상의 유력한 후보로 올라 있다.

그러나 스크린은 아름다움은 커녕 일그러진 미국인의 인간상으로 가득차 있다.

"아메리칸 뷰티"의 사전적 의미대로 고급스런 붉은 장미는 극중에 넘치는데 기대했던 미녀는 허풍스런 여고생 한명 뿐이다.

영화를 이끄는 40대의 남자 주인공의 인간상은 그야말로 속물의 표상이다.

무기력하며 이기적이고 마약까지 즐긴다.

더욱 못봐 줄 것은 어린 딸의 친구에 빠져 심심하면 섹스 판타지에 젖는 것이다.

그 아내 또한 세속적 야망에 들떠있는 데다가 불륜까지 저지르는 바람둥이다.

이웃에 사는 퇴역장교의 가정은 폭력만 있을 뿐 가족간의 대화가 끊어진지 오래다.

한집 딸은 아버지를 청부살인할 궁리나 하는가 하면 다른 집 아들은 마약밀매로 가출자금을 모으기에 바쁘다.

한마디로 두개의 콩가루 집안이 벌이는 가정파탄 경연장같은 영화다.

감동요소가 별로 엿뵈지 않는 이 영화가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부정적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사실접근과 그것을 은유적으로 처리한 영화적 기교때문이다.

보통관객의 입장에선 초반부터 "뭐 이런 영화가 다 있나"싶어 본전생각도 할만하다.

그러나 종반의 여운을 생각하면 그렇게 쉽사리 포기할 필요는 없다.

특히 40대이상의 성인에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요소가 많다.

이웃사람의 총에 맞아 허무하게 죽는 주인공의 마지막 모습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미소를 머금은 채 평화롭게 숨을 거두는 케빈 스페이시의 임종 연기가 인상적이다.

그 표정은 세상의 삶을 소풍으로 비유한 천상병의 시 "귀천"을 연상케 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이 죽음을 앞두고 사랑했던 소녀를 통해 소중한 가족이 있었음을 확인한다는 마지막 상황설정은 너무 갑작스럽고 교훈적이라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여하튼 "아메리칸 뷰티"라는 아리송한 작명이 관심거리다.

평자들간에도 해석이 분분하여 감독(샘 멘데스)에게 물어 볼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그러나 스토리 전개에서 냉소와 은유가 지나치다 보니 쉽게 이해가 안되는 것이 탈이다.

어느 평자의 말대로 이 영화에서 일상속에 숨겨진 소박한 아름다움의 소중함을 깨달은 주인공의 달관을 읽은 관객이 있다면 그는 영화전문가로 나서도 좋을 것이다.

편집위원 jsrim@ k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