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는 양잠(養蠶)에서 먹는 양잠으로…소화·항산화 기능 탁월
농진청, 과실 크기 키운 '대심' 등 개발…농가 생산량 증가 기대

[※ 편집자 주 = 각종 콘텐츠 플랫폼에서 '먹방', '맛집'이 주요 콘텐츠로 자리 잡으면서 먹거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요식업계는 자영업 태동기, 프랜차이즈 시대, 노포·맛집 유행기를 지나 이제는 어떤 식재료를 사용해 음식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해지는 '식재료 시대'에 왔습니다.

연합뉴스는 농도(農道) 전북에 자리한 농촌진흥청과 함께 국내 우수 식재료(농축산물)와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생산물, 생산자, 연구자의 뒷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또 현업에 있는 셰프와 식음업계 전문가들의 솔직한 식재료 리뷰를 담아내 소비자의 궁금증을 해소할 계획입니다.

코너 제목은 '좋은 식재료를 탐구하고 연구한다'는 의미로 호식탐탐으로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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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식탐탐] ⑩ 아낌없이 주는 뽕나무 열매 '오디'
뽕나무는 뿌리, 가지, 잎, 열매 자신의 모든 부산물을 내어주는 나무라 예로부터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 불렸다.

상엽(桑葉·뽕잎)은 누에의 먹이로 쓰고, 상근백피(桑根白皮·뽕나무뿌리)와 상지(桑枝·뽕나무가지)는 약재로 쓰며, 열매인 오디는 초여름 달콤한 간식으로 먹는다.

심지어 뽕나무에 기생하는 상황(桑黃)버섯마저 항암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뽕나무는 누에를 치는 양잠(養蠶)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며 인류와 동행해왔다.

누에는 비단실을 만드는 고치를 짓는 벌레로 유일하게 뽕잎을 먹고 자란다.

농진청이 발간한 <인테러뱅-7호>(2011)에 따르면 양잠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4천650여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황제(黃帝)의 원비(元妃)인 누조(淵籬)는 누에고치를 이용해 실을 뽑고 옷을 짓는 방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약 4천300여년 전 누에를 길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삼한시대 이전에 중국에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옷감이 귀했던 옛 시대에는 양잠을 국가의 중요 과업으로 여겼고, 조선 시대에는 왕후가 궁궐에서 직접 뽕잎을 따고 누에를 치는 친잠례(親蠶禮)라는 의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농업과 곡식의 신을 모신 선농단(先農壇)과 누에의 신을 모신 선잠단(先蠶壇)을 종묘와 사직 다음으로 중요시했다는 것을 보면 당시 양잠의 위치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했음을 알 수 있다.

산업화 시기에도 양잠산업은 국가 수출의 일등 공신으로 1970년대 양잠 수출액은 약 2억7천만 달러, 국가 전체 수출량의 10%에 달할 정도로 발전한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 중국산 저가 상품이 수입되고, 노동집약적 산업이 쇠퇴하면서 사양길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 양잠을 위해 농촌 곳곳에 심어졌던 뽕나무는 뽑혀 나가고 다른 과실수와 밭작물이 뽕밭을 차지하게 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췄다.

[호식탐탐] ⑩ 아낌없이 주는 뽕나무 열매 '오디'
뽕나무가 다시 농촌 들녘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0년 초 뽕나무 열매인 '오디'가 항산화물질이 풍부하고 당뇨 예방 등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양잠이 뽕나무 재배의 주요 목적이던 시절에는 열매인 오디는 그저 양잠산업의 '부산물'에 불과했다.

오디는 봄이 가고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인 5월 말 들녘을 뛰어놀다가 뽕나무가 눈에 보이면 따먹는 추억의 열매 정도로 인식됐다.

열매가 열리는 기간도 고작 2주, '공짜'로만 먹던 오디에 집중하던 사람은 없었다.

농진청 연구진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불렸던 뽕나무의 다른 생산물인 오디에 주목했다.

<동의보감> 탕액편에는 오디(상심)의 효능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성질은 차고 맛은 달며 독이 없다.

소갈증을 낫게 하고 오장을 편안하게 한다.

오래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게 된다.

검은 오디는 뽕나무의 정기가 다 들어 있다.

'
연구 결과 오디는 실제로 안토시아닌 색소 중 가장 항산화 작용이 강한 'C3G'(cyanidin-3-glucoside) 함량이 흑미, 검정콩 같은 블랙푸드 중 가장 높았다.

철·칼슘·칼륨 함량도 다른 베리류 과실보다 월등히 높았다.

오디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뽕나무 재배면적은 2012년 6천여 농가 1천878㏊까지 늘어났다.

김현복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양잠산업과 농업연구관은 "양잠산업이 1990년대 이후 사양화하면서 뽕나무 재배면적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며 "이후 주목받지 못했던 오디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면서 안토시아닌 색소, 레스베라트롤, 가바 등 기능성 물질이 확인됐다.

이때부터 입는 양잠에서 먹는 양잠으로 재배 목표가 전환됐다"고 소개했다.

[호식탐탐] ⑩ 아낌없이 주는 뽕나무 열매 '오디'
농진청 연구진은 오디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올해 오디가 소화 기능 개선에도 뛰어난 효과가 있음을 쥐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농진청은 동의대 연구진과 함께 오디 분말을 쥐에게 먹인 결과, 소화 기능과 위장 운동을 나타내는 지표(위장관 이송률)가 아무것도 투여하지 않은 쥐와 비교해 64.4%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또 장폐색을 앓는 쥐에게 오디 분말을 먹였을 때도 소화 기능 지표가 82.4%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진청은 이번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뉴트리언츠'(Nutrients)에 발표했고, 관련 내용을 국내 특허로 출원했다.

양잠을 위한 뽕나무가 아닌 열매를 따기 위한 뽕나무 재배가 주를 이루면서 품종 육성도 열매에 초점을 맞춰 진행됐다.

농진청은 2017년 과실이 크고, 수확량이 좋은 '대심'을 출원하고, 수향(2017년), 상마루(2018년), 심강(2019년), 새알찬(2022년) 등을 잇달아 보호 품종으로 등록했다.

과실용 대표 품종인 대심은 단과 중량이 5.49g으로 크면서도 당도가 13브릭스(brix)를 유지하는 강점이 있다.

가장 최근에 개발된 새알찬은 과실이 대심보다 작지만 오디에서 잘 발생하는 균핵병에 강해 안정적인 생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 연구관은 "현재 오디 생산은 기로에 서 있다.

생과용인지 가공용인지에 따라 품종 재배를 달리하고, 또 지역에 따라서 다른 품종을 보급해 지역별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오디의 기능성 연구를 심화하고, 홍보를 강화해 소비자들이 찾을 수 있는 과실이 되도록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오디가 과실 작물로서 경쟁력이 있는 이유는 풍부한 기능성 성분뿐 아니라 재배의 용이성에도 있다.

[호식탐탐] ⑩ 아낌없이 주는 뽕나무 열매 '오디'
오디 농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오디 재배가 다른 작물보다 노동력이 적게 들고, 수익성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충남 공주에서 오디 농사를 짓는 최종열(72)씨는 "8년 전부터 오디 농사를 짓기 시작해 현재는 1천700평 정도를 혼자서 재배하고 있다"면서 "냉해에 조금 약한 것을 제외하고, 수확도 가지를 흔들어 터는 방식으로 하기 때문에 넓은 면적을 혼자 재배하는 데도 크게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어 "오디는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약 2주간 수확하는 데 이 시기만 수확망에 떨어진 오디와 불순물을 분리하는 작업을 위해 인력을 사서 쓰고 있다"면서 "마늘이나 벼농사보다는 부대 비용이 적게 들고, 그렇기 때문에 수익성에서도 훨씬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오디는 친환경 식품이 각광받는 현대사회에 잘 들어맞는 식품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은 뽕나무 재배 자체가 양잠을 위한 뽕잎 채취를 위해 시작됐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누에가 먹는 뽕잎에 농약이 조금이라도 잔류할 경우 누에가 폐사한다.

그만큼 뽕나무는 농약에 예민하게 재배되고, 과실용 뽕나무 역시 뽕잎차나 나물 등 가공식품 생산을 위해 농약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당도가 높고, 수분이 많은 오디를 생과 주스 외에도 한식과 양식 레시피에 모두 활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리산 제철음식학교를 운영하는 음식문화운동가 고은정 대표는 "제철에 난 오디는 생과나 냉동 오디를 이용해 주스를 만들어 먹는 게 일반적이지만 과즙을 이용해 수제비나 칼국수 반죽에 넣을 수도 있다"면서 "또 과즙과 설탕 절임을 해서 백설기나 절편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고 소개했다.

고 대표는 이어 "과실용 품종인 대심 같은 품종은 오디잼, 오디 콩포트를 만들어 빵과 과자 등에 올려 먹고, 설탕에 재워 스콘이나 제빵에도 활용할 수 있다"며 "건조를 시키면 과자처럼 먹거나 가루로 내 사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엠티푸드시스템 엄선용 수석 셰프는 "대심은 풍미는 산딸기보다 조금 약하지만, 식감이 좋고, 은은한 단맛이 매력"이라며 "화이트 와인과 양조식초를 넣어 조린 뒤 오디퓨레를 만들어 오리 같은 육류 요리에 곁들어 먹으면 좋다"고 설명했다.

[호식탐탐] ⑩ 아낌없이 주는 뽕나무 열매 '오디'
(도움 주신 분들 : 박진우 농진청 홍보팀장, 김승호 주무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