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롤렉스 홈페이지
사진=롤렉스 홈페이지
1945년 2월, 독일 동부의 유서 깊은 도시인 드레스덴에 방공 사이렌이 울렸다. 영국 공군 소속 전략폭격기의 조종사의 눈이 일제히 자신의 손목시계로 향했다. 수백 대의 폭격기는 미리 맞춘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소이탄 등 엄청난 양의 폭탄을 일제히 쏟아냈다.

전쟁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드레스덴 공습의 결정적인 장면 중 하나다. 영국 공군의 공습은 두 차례 이어졌다. 약 15분간의 첫 번째 공습을 단행한 뒤,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이 밖으로 나올만한 시간에 또 한 번의 결정적인 타격이 가해졌다.

당시 폭격기 조종사들에겐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그들 손목에 있던 롤렉스였다. ‘시간이 곧 생명’과도 같았던 조종사들은 정확한 시간을 제공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망가지지 않을 시계를 원했다.

‘드레스덴 공습과 손목시계’만큼 롤렉스의 가치를 웅변하는 장면이 있을까. 상공에서 투하 버튼을 누르던 찰나의 시간은 지상에선 ‘단테의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기둥을 보면서 드레스덴 시민들은 1초가 억겁의 시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롤렉스의 시간은 지상에서건 상공에선 똑같았다. 희로애락을 초월한 우주의 질서인 시간을 관장하는 차가운 신(神)이 롤렉스였다.

시간을 관장하는 지상의 신(神)

롤렉스는 독일 바이에른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한스 윌스도르프가 1905년 영국에서 시계 점포를 열면서 출발했다. 롤렉스라는 브랜드가 탄생한 건 1908년이다. 1차 세계 대전 중 영국 정부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수입 물품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자 1920년 롤렉스는 본사를 스위스 제네바로 옮겼다.

세계 최초의 손목시계이자 세계에서 가장 정확하고 내구성이 강한 롤렉스의 생명력 중 하나가 ‘비밀주의’다. 롤렉스가 연간 몇 개의 시계를 생산하는지는 오로지 그들만 안다. 비상장사이자 본사가 중립국 스위스에 있는 터라 매출과 이익 등 실적을 알 길도 없다.
기습 폭격에 독일 '패닉'…조종사 손목엔 롤렉스가 있었다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자식이 없던 창업자의 유훈에 따라 독립적인 이사회에 의해 운영되는 롤렉스는 품질에 기반한 특유의 비밀주의 덕분에 그들의 제품을 금(金)이나 달러 같은 강력한 화폐의 지위에 올려놨다. 생산에 대한 엄격한 통제, 유통량 조절을 통한 희소성,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환금성이란 측면에서 롤렉스는 화폐나 다름없다.

롤렉스의 비밀주의는 엄격하면서도 독특한 매장 관리에서도 나타난다. 수직적인 조직 체계가 아예 없다. 예컨대 LVMH 소속 루이비통은 물론이고 비상장사이자 독립 가문 형태로 유지되는 샤넬조차 ‘본사-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한국 지사’로 이어지는 조직 체계를 갖고 있다. 브랜드 정체성 유지가 최우선인 명품 브랜드의 특성상 거의 모든 결정은 글로벌 본사에서 이뤄진다.

‘롤렉스 이너써클’…프리 메이슨 뺨치는 신비주의 전략

본사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는 점에선 롤렉스도 동일하지만, 롤렉스는 전 세계 매장을 일종의 점조직 형태로 운영한다. 한국만 해도 전국 11개(8일 기준)의 롤렉스 매장을 누가 운영하는지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을 제외하고 10개의 운영주는 개인 사업주인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조건을 충족하면 롤렉스 매장을 낼 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명품 시계 업계 관계자는 “롤렉스 매장을 내고 싶어 하는 기업과 부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줄을 서 있지만 돈과 권력이 있다고 롤렉스 매장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롤렉스와 신뢰를 얼마나 쌓았느냐가 매장을 낼 수 있는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롤렉스코리아를 설립한 이는 이윤 회장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금은방을 중심으로 유통됐던 한국의 롤렉스를 명실상부한 명품 시계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가품(롤렉스는 부품 하나만 달라도 짝퉁으로 취급된다)을 솎아내고, 롤렉스를 주요 백화점의 명품 매장으로 옮겼다.

이윤 회장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명품 브랜드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신세계백화점조차 롤렉스코리아와 직거래를 못 할 정도다. 롤렉스코리아의 김광원 사장은 IBM 출신으로, 이윤 회장의 사위로 알려져 있다. 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만 해도 상장사를 이끄는 기업인답게 국내 주요 유통기업의 오너들을 만난다”며 “이에 비해 롤렉스코리아는 일체 대외 활동을 하지 않는 편”이라고 말했다.

롤렉스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든 대리점에 판매 권한을 주는 방식으로 매장을 운영한다. 명품 업계에선 이를 ‘롤렉스 이너써클’이라고 부른다. 그들끼리만 은밀히 롤렉스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외부에는 절대 발설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명품 시계업계 관계자는 “롤렉스 딜러는 한 번 정해지면 평생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다”며 “괜히 공명심에 롤렉스에 대해 함부로 얘기했다간 딜러십을 뺏길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