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장 앞에서 거행된 ‘법정화폐의 장례식’ 이벤트. 출처=Peruvian Bull 트위터
행사장 앞에서 거행된 ‘법정화폐의 장례식’ 이벤트. 출처=Peruvian Bull 트위터
"달러 뭉치가 운구차에"…마이애미서 본 비트코인의 미래 [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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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에 가기로 결정한 이유

5월의 중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 컨퍼런스 2023’에 다녀왔다. 원래는 굳이 직접 참가할 의향은 없었으나 한 번의 우연한 만남이 모든것을 바꾸었다. 국내 한 거래소에서 개최한 작은 행사에 참여한 날이었다. 그곳에서 한 유명 크립토 업계 인플루언서를 만났고,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작년에 참가한 비트코인 컨퍼런스가 거의 배나온 아저씨들로 가득 찼다며, 젊은 개발자들과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더라고 언급했다. 이더리움쪽의 대표 행사인 ‘이드콘’은 젊고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노후한 느낌이 강하고 전반적으로 실망스러웠다고 평가했다. 그의 이야기는 그동안 내가 상상해왔던 비트코인 컨퍼런스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그래서 결정했다. 과연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기로 한 것이다. 나의 마이애미 여행은 그렇게 다소 충동적으로 결정으로 인해 시작됐다.

이번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사우스비치 해변이 있는 마이애미 비치 컨벤션 센터에서 열렸다. 호텔에서 출발한 우버가 컨벤션 센터에 도착했을 때, 나의 눈길은 자동으로 작년에 입구 앞에 전시되어 있던 거대한 로보트 황소상을 찾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올해는 황소상이 보이지 않았다. 침체되어있는 시장 분위기 때문에 주최측도 예산을 줄여야만 했을까.

비록 황소는 없었지만 고집스런 비트코인 애호가들을 만족시키며 매년 성황리에 개최되는 행사 다운 센스는 곳곳에서 돋보였다. 예를 들어, 행사장 입구에는 황소상 대신 "곰들은 환영하지 않음(Bears, not welcomed!)"이라는 표지판이 방문객들을 맞았다.

비트코인에 대한 믿음이 그리 깊지 않은 ‘곰’들은 이 표지판이 시키는대로 올해는 그들이 사는 굴에 남아 있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행사를 주최한 비트코인 매거진은 사상 최대 인원인 26,000명이 참석했던 작년과 비교했을 때 올해 참석자 수가 절반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다.

작년에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대부분 암호화폐의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에 컨퍼런스가 열렸다. 비트코인 투자로 돈을 번 기업, 전문 투자자, 일반 사람들 수가 늘어났고 그들은 자신들의 부를 자랑하고 축하하기 위한 자리라면 어디든 몰려들었다. 세레나 윌리엄스와 같은 유명인사들이 연사로 참석했으며, 부대 행사에서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선수들이 직접 공연을 선보였다.

하지만 13개월의 시간은 상당히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작년 컨퍼런스의 주요 스폰서 중 한 곳이던 셀시우스 네트워크(Celsius Network)는 파산했고, 비트코인 가격은 전고점 대비 거의 3분의 1 수준으로 추락했다. 기업들이 후원을 줄이자, 컨퍼런스의 규모와 부대 행사도 줄어들었다.

미국에선 내내 암호화폐의 증권성에 대한 이슈가 뜨거웠다. 비트코인 컨퍼런스보다 한 달 앞서 열린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행사 ‘컨센서스(Consensus)’에서는 참가 암호화폐 프로젝트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으며, 참가 기업들조차 자신들이 만든 코인을 직접 홍보하지 못했다. 규제 당국이 주시하는 상황에서 너무 도드라진 행동은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혼란에도 불구하고 올해 행사는 여전히 뜨거운 열기 속에 열렸다. ‘나카모토 스테이지’라 불리는 주요 연사들이 등장하는 무대는 어두운 조명과 테크노 음악이 어우러져 마치 마이애미 도심의 유명 클럽을 방불케 했다. 이곳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서 비트코인 관련 공약을 공개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의 연설은 이 거대한 공간을 만원 관중으로 완전히 가득 채우는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케네디 주니어의 모든 말 한마디에 청중들은 환호를 터뜨렸다. 그는 비트코인이 지지하는 근본적인 가치인 자유를 자신의 정치적 목표로 설정했다.

“대통령으로서, 나는 미국인이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사용할 권리를 보장하겠다. 나는 평생을 자유를 지지하며 살아왔다. 비트코인은 이러한 자유를 구현하고 보장하는 도구다.” -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

그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비트코이너들 앞에서 비트코인 채굴자에게 30%의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채굴에 사용되는 전력의 세부적인 출처를 정부에 보고하게 하려는 바이든 행정부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아직은 그의 무대 앞에 모인 12,000여명의 청중이 그를 대통령 자리까지 이끌어줄 힘이 되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숫자가 12만명으로, 그리고 120만명으로 불어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비트코인의 힘이다.
"달러 뭉치가 운구차에"…마이애미서 본 비트코인의 미래 [한경 코알라]
행사장은 비트코인 로고가 새겨진 참가자들의 의류와 액세서리로 물들었다. 2층 건물 높이만큼이나 큰 비트코인 풍선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콘홀 게임 (약 450g의 옥수수가루가 든 주머니를 약 8미터 떨어진 보드에 던져 구멍에 넣으면 점수를 얻는 스포츠)에 참여해 비트코인 상금을 얻는 등,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행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재미와 볼거리가 가득한 행사장 분위기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엑스포 홀’에는 다양한 전시품들과 기업 부스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특히 입구에 자리한 영화 ‘백투더 퓨처’에서 등장하는 1981년식 드로리안 DMC-12 자동차가 방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동차의 계기판에는 비트코인의 첫 블록이 생성된 날짜, 비트코인으로 첫 피자 구매가 이루어진 2010년 5월 22일, 그리고 현재 날짜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타임머신을 타고 계기판에 적힌 날짜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엄청난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면? 아마도 이런 행복한 꿈의 가격이 반영되었는지, 행사 기간동안 진행된 이 차량의 경매가는 무려 30만 달러(약 3억 9천만원)까지 치솟았다.

행사장 곳곳에서는 강렬한 인상을 남길만한 이벤트들이 펼쳐졌다. 첫날 아침에는 예고없이 행사장 앞 도로에 나타난 운구차가 한대가 행사 참가자들의 눈길을 한눈에 사로잡았다. 사람들이 이게 무슨일인지 궁금해하며 쳐다보는 동안 장례식 복장을 입은 한무리의 사람들이 커다란 관을 차에서 내려놓았다. 관 속에는 달러 지폐 뭉치들과 “#FiatFuneral(법정화폐 장례식)"이라는 메시지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이내 나타난 4인조 여성 합창단이 관 옆에 서서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성자의 행진)"이라는 감동적인 가스펠 곡을 열창했다.

노래가 끝난 후 관은 마치 진짜 장례식 절차가 진행되듯 천천히 행사장 안으로 옮겨졌다. 어렵사리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뒤에는 한동안 행사장 입구 앞에 전시되어 관람객들을 맞았다. 밖에서 열띤 합창을 하던 여성들은 "Hallelujah Bitcoin(할렐루야 비트코인)"이라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함께 관 옆에 함께 자리했다. 이 장면은 비트코인이 단순히 인터넷 게임에서나 쓰이는 사이버 머니가 아니라, 언젠가 정말로 달러를 대체하고 기축통화가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무분별한 돈풀기로 화폐 구매력을 하락시키는 중앙은행에 보내는 경고이기도 했다.

엑스포 홀 한편에는 ‘비트코인 미술품 갤러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비트코인 주제의 창작물을 전시하고 경매를 통해 판매하는 공간이었다. 히토미 마츠이(Hitomi Matsui)라는 예술가는 이곳에 비트코인 테마의 맥도날드 레스토랑을 만들어 전시했다. 관람객들은 그녀가 지난 6개월 동안 공들여 만든 가짜 빅맥, 해피밀 장난감, 음료 등을 비트코인을 주고 구매할 수 있었다.

‘히토미의 드라이브쓰루’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질때마다 온라인에서 유행하는 밈(Meme)을 비판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에서는 주변 지인의 비트코인 투자를 만류하거나 비트코인에 투자했다가 돈을 잃은 사람을 조롱할때 “가서 맥도날드에서 일이나 해라”라는 표현을 쓴다. 위험한 투자를 계속하면 재산을 탕진하고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살게된다는 걱정을 내포한 말이다.

히토미의 전시품은 일부러 가격을 실제 맥도날드에서 파는 제품보다 비싸게 책정하여, 오히려 비트코인에 투자하지 않으면 갈수록 가난해지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아냈다. 비트코인 맥도날드에서 케첩 한 팩은 0.00055 BTC로 약 15 달러, 해피밀 세트는 0.013 BTC로 무려 350달러에 달했다. 갈수록 구매력이 하락하는 법정화폐 때문에 점점 맥도날드 제품 가격이 비싸지는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프랙탈인크립트(FractalEncrypt)’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예술가는 7개월 동안 공들여 만든 ‘타임체인 코덱스’를 전시했다. 코덱스는 인쇄되지 않고 사람 손으로 씌여진 옛날 책을 말한다. 나무와 거울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이 책은 마치 소설 ‘다빈치 코드’에 나오는 암호로 가득한 중세시대 유물처럼, 비트코인의 코드에 사용된 수학 공식들과 암호들이 곳곳에 들어있었다.

평균 10분에 하나씩 블록이 생성되며 누구도 이 공식을 바꿀 수 없는 비트코인은 시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1시간은 144 블록, 1주일은 1,008 블록, 1개월은 4,380 블록, 그리고 1년은 52,560 블록으로 환산된다. 타임체인 코덱스 표지에 들어간 톱니바퀴 장치는 마치 24시간 기준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처럼 비트코인 블록으로 표현되는 시간을 나타낸다. 평소 비트코인을 블록체인이 아니라 ‘타임체인’이라고 자주 표현하는 마이클 세일러가 행사장에서 이 예술품을 보고 매우 좋아했으며, 그날 저녁 예술가를 자신의 마이애미 집으로 초대하여 직접 코덱스를 구매했다는 후문이 전해졌다.
중세시대 유물처럼 생긴 비트코인 코덱스. 출처=FractalEncrypt 트위터
중세시대 유물처럼 생긴 비트코인 코덱스. 출처=FractalEncrypt 트위터

디지털 르네상스의 무대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단순히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토론하는 행사가 아니다. 이곳은 정치, 문화, 예술이 한데 어우러진 곳이며,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블록체인 기술에 관심을 가진 개발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 전 세계에서 이 행사를 찾는다. 때문에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암호화폐 행사라기 보다는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14세기 후반 유럽 국가들간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문화계에 큰 변혁이 일어난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던 것처럼,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비트코인이라는 디지털 세상의 기축통화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화가 싹트고 있음을 생생히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내가 경험한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디지털 르네상스 시대’의 축약판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일반 암호화폐 밋업, 행사, 컨퍼런스와는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비트코인의 가치와 가능성을 넘어, 그것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곳에서는 비트코인이 단순히 가치를 저장하고 전송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회와 문화, 심지어는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나이많고 배나온 아저씨들만 거드름 피우며 활보하는 그저그런 암호화폐 행사가 아니다. 사실 비트코이너들은 현재보다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세 때문에 건강하게 먹고 꾸준히 운동하며 몸매 관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오디널스와 BRC-20, 라이트닝 네트워크 등 확장성 프로토콜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이곳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기 위해 컨퍼런스를 찾은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창업가들도 많았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서 얻은 교훈은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단순히 코인 가격이 오를까 내릴까를 이야기하는 곳이 아니라, 디지털 세상의 새로운 문화와 기술을 함께 만들어가는 창조의 장이라는 것이다. 비트코인 컨퍼런스는 '디지털 르네상스의 무대'다. 그리고 이곳에 모였던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창조자들이다.

백훈종 샌드뱅크 COO는…

안전한 크립토 투자 앱 샌드뱅크(Sandbank)의 공동 창업자 겸 COO이자 "웹3.0 사용설명서"의 저자이다. 가상자산의 주류 금융시장 편입을 믿고 다양한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샌드뱅크를 만들었다. 국내에 올바르고 성숙한 가상자산 투자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매스컴에 출연하여 지식을 전파하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