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에 오래 있어 봐야 말년이 편하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 같다.”

6일 정부 부처의 한 사무관은 “윗선의 지시를 따랐다가 감사나 수사를 받는 선배 공무원의 소식을 접하면 내 미래도 불안해진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적폐 청산’과 무리한 정책 전환 요구는 젊은 공무원들이 공직 사회를 떠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문재인 정부 당시 적폐 청산의 후유증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정부에선 부처마다 적폐 청산 위원회를 설치해 고위 공무원은 물론 실무자까지 탈탈 털었다. 이와 관련해 기소된 공직자만 100명이 넘는다. 교육부는 임명권자인 전임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관련자를 13명이나 수사의뢰했다.

올초엔 문재인 정부에서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관련 자료를 삭제한 혐의로 구속된 공무원 3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정부 부처의 또 다른 사무관은 “해당 공무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저버리고 부당한 지시를 따른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면서 “하지만 ‘나라면 다르게 행동했을까’ 생각해 보면 자신 없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거 일 잘하는 공무원이 몰리던 핵심 부서가 이제는 기피 대상이 되고, 나중에 문제 될 일이 없는 근무처를 선호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엔 행정고시 67기 5급 공개채용에서 일반행정직 수석이 해양수산부에, 차석은 농림축산식품부에 지원해 배치됐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직 사회에선 ‘제2의 변양호 신드롬’이 불어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한다. 2003년 외환은행 매각을 주도한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헐값 매각 시비에 휘말려 구속된 뒤 4년간의 법정 공방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공무원 사회엔 오해를 살 만하거나 책임질 만한 정책 결정을 회피하는 경향이 생겼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갑작스레 나타나는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늘공’(늘 공무원)을 지배하면서 공무원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부처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정권 교체를 앞두고 보신주의가 강해질수록 정부는 균형추 구실을 하지 못한다”며 “이러는 사이 포퓰리즘적 정책이 난무할 가능성도 커진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