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4월 미국에서 파산 신청한 기업이 10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 고금리와 인플레이션에 경영 환경이 악화한 탓이다. 소비 둔화마저 심화하자 중소기업에선 앞으로 경영환경이 더 악화될 거란 비관론이 확산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S&P 글로벌마켓 인텔리전스는 올해 1~4월 미국에서 파산 신청한 기업 수는 236건으로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지난달 파산 신청한 기업 수는 54건으로 지난 3월(70건)에 비해 줄었다. 다만 매년 1~4월 기준으로는 2010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S&P 글로벌에 따르면 주로 소비재 기업이 다른 업종보다 파산한 기업이 많았다. 부채 규모 기준(10억달러 이상) 상위 8개 파산 기업 중 4개가 소비재 기업이었다. 지난달 파산한 생활용품 기업 배드배스앤드비욘드를 비롯해 존슨앤드존슨(J&J)의 자회사인 LTL매니지먼트, 침대 매트리스 기업 세르타 시몬스 배딩, 파티 플래닝 기업 파티 시티 홀드코 등이다.

기업 파산이 급증한 건 소비 둔화의 여파로 풀이된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겹치며 미국의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아버려서다. 뉴욕 연방은행이 지난 8일 발표한 소비자 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1년 후 소비자 지출은 5.2%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 3월(5.7%)보다 0.5%포인트 낮아지며 2021년 9월 이후 최저치를 찍었다.

소비가 둔화하며 중소기업 경영 환경은 더 악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자영업 연맹(NFIB)은 9일 중소기업 낙관지수가 전월 대비 1.1포인트 하락한 89를 기록했다. 2013년 1월 이후 10년 만의 최소치를 찍었다. 이 지수는 9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소기업들의 성장을, 그 이하면 위축을 의미한다.

자영업자들은 앞으로 더 경영환경이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6개월간 경영 환경이 개선될지에 대한 지표는 전월 대비 2%포인트 하락한 -49%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요소를 걷어낸 조정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고 보는 자영업자도 크게 줄었다.

마이클 피어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 애널리스트는 "중소기업 낙관지수가 축소된 건 지난해부터 이어진 소비 심리 약세와 대체로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지난달 은행 위기의 후폭풍은 잠잠한 모습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중 30%는 신용 상황이 견조하다고 답했다. 대출받지 않아도 된다는 자영업자는 59%로 3월과 동일했다. 다만 자금 조달이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답한 비율은 3월보다 1%포인트 증가한 4%로 집계됐다.

찰리 도허티 웰스파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자영업자들의 비관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지만 오히려 신용 경색에 대한 우려는 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요인은 노동력 감소였다. 자영업자 중 45%가량이 구인난에 시달린다고 답했다. 3월보다 2%포인트 증가했다. 주로 건설업과 운송업에서 구인난이 심화했다.

숙련공의 경우 구인난이 더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무에 적합한 노동자를 찾는 게 경영 악화의 원인이라는 비율(24%)이 인플레이션(23%)을 앞질렀다. 오히려 지난달 평균 판매가격을 낮췄다는 자영업자 수는 3월에 비해 늘었다. 인플레이션 문제는 일단락됐다는 설명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숙련 노동자가 대거 은퇴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수순에 접어들며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왔다. 지난 5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25~54세 노동자 중 83.3%가량이 다시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3월 이후 미국 노동시장에서 사라진 400만명을 대체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대부분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였다. 지난 4월 신규 취업한 여성 수는 30만 5000여명으로 남성(16만 5000명)보다 많았다. 빌 던켄부르크 NFIB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점점 더 많은 경영자가 숙련 노동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때문에 경제가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축소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